정부 차원 다양한 대책 있었지만 금품수수·봐주기 그대로
LH "재발 방지 노력"…설계업계선 "아직 정신 못 차렸다"
LH는 최근 몇 년 집중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건축 사업 관련 유착·비리 논란에 휩싸였다. 감사원이 2021년 '불공정 계약 실태'를 감사한 데 이어 작년 말부터 올해 초순까지 '전관 특혜 실태'를 확인한 결과 다양한 형태의 금품수수와 봐주기 행위가 드러났다. LH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대책이 있었지만 흙탕물은 쉽게 정화되지 않았다. LH는 이번에도 재발 방지 노력을 약속했는데 건축설계업계에선 업체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 망가진 관리체계·무너진 아파트
11일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前官) 특혜 실태' 감사보고서를 지난 8일 공개했다. 같은 날 LH는 '무량판 부실 근절을 위해 구조안전 업무를 강화했으며, 전관 특혜 방지를 위해 권한을 줄이고 감독을 확대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보도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이번 감사에서 감사원이 설정한 전관 범위는 '2018년 이후 LH와 설계·감리 등 계약 이력이 있는 업체에 재취업한 2013년 이후 3급 이상 LH 퇴직자'다. 감사 기간은 지난해 11월13일부터 12월8일까지, 그리고 올해 1월22일부터 2월23일까지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5월7일 검찰에 구조설계 하도급 대금 지급 증빙을 변조하거나 하도급 대금을 되돌려받은 3개 건축사사무소와 직무 관련 업체로부터 금품 등을 받은 2명에 대해 수사 의뢰했다.
이번 감사의 발단이 된 사고는 2023년 4월29일에 일어났다. 신축 공사 중이던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무너졌다. 건설사고조사위원회가 그해 5월9일부터 7월1일까지 이 사고를 조사했고 사흘 뒤 7월5일 보고서를 통해 검단 LH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 원인으로 설계·감리·시공 부실에 따른 전단보강근 미설치 등을 지목했다. 전단보강근은 수평 보가 없는 무량판 구조에서 구조 안전성을 확보하고자 기둥 상부와 슬래브에 설치하는 철근이다.
LH는 2023년 5월부터 무량판 구조 지하 주차장이 적용된 102개 지구에 대해 긴급 안전점검을 했다. 점검 결과 22개 지구에서 전단보강근 전부 또는 일부가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 감리 담합 혐의자 대거 기소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공공건물 감리 입찰 참여 업체들이 답합하고 심사위원들에게 거액 금품을 제공한 사건을 수사해 68명을 기소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번 기소 관련 감리업체들은 2019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공공 발주 감리 입찰 총 94건(LH 발주 79건·조달청 발주 15건)에서 낙찰금액 합계 약 5740억원 규모로 담합한 협의를 받는다. 또 교수와 공무원 등 입찰 심사위원들은 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업체들로부터 청탁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작년 12월12일 국토교통부는 LH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제거한다며 'LH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건설산업 전반에 고착화된 카르텔을 깬다며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을 내놨다. LH 혁신 방안에는 LH 퇴직자 재취업 심사 대상과 입찰 제한 대상을 2급 이상에서 3급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혁신 방안이 나오기 약 3개월 전 LH는 언론과 국회 등에서 전관 업체 문제가 계속 제기되자 자체적으로 전관 업체 기준을 설정한 바 있다. LH가 규정한 전관 업체는 '입찰공고일 기준 2급 이상(재취업사 임원이면 모든 직급 적용)으로 LH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자가 일하는 업체'였다.
◇ 약효 없는 감사·대책
국토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2022년 9월7일 '산하 공공기관 혁신 방안' 추진 상황을 발표했다. LH에 대해선 임직원 가족 부동산 투기 행위 조사 실효성 강화와 퇴직자 수임 제한 기간 확대 등을 추진한다고 했다.
앞서 감사원은 2022년 6월 '공공기관 불공정 계약 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바 있다. 2021년 3월 국회와 언론이 LH가 퇴직자들이 재취업한 건축사사무소에 건축설계 용역 등 일감을 몰아줬다는 문제를 제기하자 LH는 물론 한국도로공사, 한국전력공사까지 포함해 2016~2021년 체결한 수의계약 적정성을 감사했다. 감사는 2021년 8월23일부터 9월3일까지 1단계, 9월6~16일 2단계로 나눠 진행했다.
감사 결과 LH 퇴직자가 근무하는 업체가 공동주택 설계·건설사업관리 용역 공모 기간과 심사 직전에 LH 내부위원과 사전 접촉했지만 LH가 감점 등 제재를 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LH가 주택지구 지정 제안 등 후보지 관련 용역 발주 업무를 하면서 관행적으로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와 수의계약한 경우도 있었다.
2021년 6월7일 시행된 관계 부처 합동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LH 혁신 방안'에 따르면 LH는 LH 퇴직자가 실질적 이사로 있는 업체와 '2년간 수의계약 금지' 지침을 '5년간 수의계약 금지'로 개정했다. 같은 해 8월23일에는 설계·건설사업관리 용역 심사·평가위원을 선정할 때 내부 직원을 배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어 인사혁신처는 LH 직원의 전관예유 관행을 근절하고자 2021년 10월2일 임원만 해당했던 LH 취업심사대상자에 1~2급 직원을 추가했다.
◇ 숨바꼭질은 계속
LH는 이번 전관 특혜 실태 감사에 따른 감사원 지적 사항 중 건축설계 부당 하도급 방지 등 추가 절차 이행이 필요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이행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조치가 완료되지 않은 부분은 즉시 이행하고 향후 유사 사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건축설계업계에선 여전히 LH 공동주택 설계공모 등을 둘러싼 유착과 부정행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A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감리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있었지만 설계까지는 검찰 수사가 미치지 않았다"며 "설계업체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B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조달청으로 LH 설계공모 심사 업무가 넘어간 후에도 영업력이 강한 대형 설계업체들의 심사위원 대상 로비는 여전하다"며 "LH가 올해 설계공모를 묶음 발주해 규모를 키우면서 평소 심사위원을 잘 챙기는 대형 업체들로 일감이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