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속실'은 尹 공약대로 폐지… 여야, '부활' 갑론을박
김건희 여사가 역대 영부인을 예방하는 등 본격 공개활동에 나서면서 대선기간 약속했던 '조용한 내조'는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해 폐지한 영부인 보좌실 '제2부속실'을 부활시켜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일정이 있을 때만 보좌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역대 영부인 잇따라 예방
'대통령 부인 역할' 조언 구해
김 여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와 고(故)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를 잇따라 만났다.
먼저 김 여사는 지난달 하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를 만났다.
이어 지난 1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권 여사를 예방해 90분간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김 여사는 "국민통합을 강조한 노 전 대통령을 모두가 좋아했다"고 권 여사에게 말했다.
또 김 여사는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에 조언을 구했고, 권 여사는 "정상의 자리는 평가받고 채찍질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많이 참으셔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흘 뒤인 16일에는 서울 연희동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예방했다.
약 1시간30분 가량 환담을 마친 김 여사는 자택을 나서며 취재진이 여러 질문을 했지만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일각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전 전 대통령 부인을 만나는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 부인들을 만나는 건 대통령 부부의 국가적 예의를 지키는 차원"이라고 일축했다.
김 여사는 17일에는 서울 모처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환담했다.
당초 김건희 여사가 문 전 대통령 양산 사저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양측은 김정숙 여사가 상경했을 때 서울에서 만나는 쪽으로 일정을 조율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양산 사저를 방문할 경우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 등을 놓고 갖가지 정치적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연일 벌어지는 시위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는 이 외에도 지난 14일에는 여당 중진의원 부인들과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오찬을 했다.
이번 모임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부인이 "대선 때 많은 의원이 고생했는데 먼저 중진 의원들 부인들을 초청해서 인사하는 자리를 갖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먼저 제안하며 성사된 것으고 전해진다.
권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진 부인들끼리 따로 차도 마시면서 '참 솔직하고 소탈하더라'(라고 했다)"고 전했다.
◇ 봉하마을 방문 일정에 지인 동행
코바나컨텐츠 출신 대통령실 근무도
다만 이 과정에서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봉하마을 방문 때 지인이 동행한 데다, 당시 수행원들이 김 여사가 과거 운영했던 코바나콘텐츠 직원 출신임이 드러나면서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때 김 여사 곁에는 검은 티셔츠 차림의 한 여성이 내내 같이 있었는데, 한때 야권 성향의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이 여성이 무속인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여성은 충남대 무용학과 교수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사진에 나온 사람은 저도 잘 아는데, 제 처의 오래된 부산 친구"라면서 "(권양숙) 여사님 만나러 갈 때 좋아하시는 빵이나 이런것을 많이 들고간 모양인데, 부산에서 그런 것을 잘 하는 집을 안내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들을 게 많아서 같이 간 모양"이라며 "봉하마을은 국민 모두가 갈 수 있는 데 아닌가"라고 했다.
또한 코바나컨텐츠 출신 직원 2명은 실제 대통령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5일 서울 용산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여사의 최근 봉하마을 방문) 사진을 보면 여자분이 네 분 등장하는데, 한 분은 (지인인) 충남대 교수이고 나머지 세 분은 대통령실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3명 중) 한 분은 예전에 다른 일을 했고 한 분은 코바나에서 근무를 잠깐 했고 다른 한 분도 역시 그쪽에서 일을 도왔던 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충남대 교수 역시 전 코바나컨텐츠 전무 출신으로, 4명 가운데 3명이 코바나컨텐츠 출신인 셈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전직 직원'이므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를 의식한 듯 김 여사는 다음 일정인 이순자 여사 예방 때에는 대통령실 직원 1명만 동행했다.
이 외에도 김 여사의 팬클럽인 '건희사랑'도 도마위에 오른 상태다.
'건희사랑'은 강신업 변호사가 운영해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의 일상 사진이 대통령실의 공식 경로가 아닌 이 팬클럽을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다.
여기에 운영자인 강 변호사는 김 여사 사진 유출과 회비 모금 등으로 논란을 산 가운데 이를 지적한 시사평론가 유창선씨에게 공개적으로 욕설을 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 野 '과연 조용한 내조인가' 맹폭
與 일각서도 '제2부속실' 설치 촉구
이 같은 김 여사의 일련의 논란에 야권을 공세를 퍼붓고 있다.
명분은 김 여사가 지난해 12월 이른바 '허위 경력' 논란이 들끓던 당시 기자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면서 '조용한 내조'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 당선 후 보폭을 넓혀가는 김 여사의 행보에 대해 '과연 조용한 내조인가'라는 문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김 여사가 봉하마을 방문에 지인을 동행한 것과 관련해 "김 여사는 사적으로 봉하마을을 간 게 아니다. 공식 행보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공사 구분을 하지 못한 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제2부속실 폐지와 (김 여사의) 조용한 내조를 공약했으나 막상 김 여사는 광폭 행보에 나서고 있다"면서 "김 여사의 공개 행보 문제는 무엇보다 제2부속실 폐지와 영부인 없는 대통령실 공약을 전면으로 파기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야권 인사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같은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김 여사가) 봉하에 간 건 잘한 일인데, 동행한 사람이 문제되고 있다"면서 "다행히 무속인이 아니어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원장은 "김 여사(를 보좌할) 부속실을 안 만들면 반드시 사고가 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여권 일각에서도 '제2부속실'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의 일정을 관리하고 수행, 비서 업무와 의상 등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역대 정권마다 차이는 있지만 실장과 경호원 등 6명에서 10명 수준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김용태 청년 최고위원은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영부인 자리와 역할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영부인 내조는 공적 영역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설치를 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하태경 의원도 이날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공약 번복을 깔끔하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고 제2부속실을 만드는 게 맞다"고 밝혔다.
하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제2부속실을 안 두고 싶은 것 같다. 본인이 공약을 했다"면서 "'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다. 공약을 지키고 싶은 의지가 강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신중론을 펴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2부속실을 부활하지 않더라도 대통령 부인의 공적 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며 "공약 파기이기 때문에 가급적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17일 'CBS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조용한 내조란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느냐, 낮추지 않느냐"라면서 "제2부속실 폐지로 세금이 엄청나게 줄었다. 김 여사를 보좌할 수 있는 공적인 팀은 단 두세 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