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그룹 AL_SEASON과 성곡미술관은 오는 25일부터 4월3일까지 성곡미술관 2관에서 한국인의 삶의 철학 ‘적선(積善)’을 주제로 한국 사진의 정점에 서 있는 이갑철과 호롱 도자로 백미의 조형성을 구축한 김성철의 전시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전시 ‘적선(積善)하다_빛으로 그린 어진 마음, 사물을 이루고’는 일생 동안 지은 어진 삶으로 선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에 참여한 두 작가는 선조 임금이 하사한 글 ‘적선’을 가풍으로 삼은 농암 이현보의 안동 ‘종암종택’의 정서를 작가 저마다의 시선과 감각으로 치밀하게 풀어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지만 사람이 행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박애 와 긍휼의 선을 쉼 없이 쌓는, 적선하는 삶이다.
옛사람들은 주머니에 돈을 넣어 길에 놓거나 다리가 없어 사람의 내왕이 불편한 곳에 다리를 놓아두는 일로 적선을 행했다. 이러한 경우를 월강공덕(越江功德)이라고 한다.
남을 위해 착한 일을 하므로 신의 보살핌에 의하여 액을 미연에 막고 더 나아가서는 신의 은혜를 입어 행운을 누리게 된다고 믿었다.
적선(積善)은 매일 실천해야 하는 행동 강령 이전에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내사(內思)와 좌망(坐亡)의 실천 철학이다.
온전한 삶을 위한 고행의 한 방편이자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면서 깊은 생각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몹시 아끼는 품성을 위한 정진의 세계다.
또한 적선은 무심한 태도로 잡념을 버리고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삶 속에서 진리를 밝히기 위해 무아 의 경지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이데아다.
기획전 ‘적선(積善)하다’는 빛과 흙으로 빚어진 순간들의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시간을 쌓아가는 방식과 우리가 실천하는 선한 예술의 행위들이 어떻게 남겨지는지를 탐구한다.
선은 행동으로 쌓 이고, 빛은 모여 길을 밝히며, 순간들은 맥락으로 이어져 의식의 흐름을 이룬다.
전시에 참여한 이갑철‧김성철 두 예술가는 삶의 모퉁이를 돌아가는 선한 흔적을 감각의 지성으로 묘사했다.

사진가 이갑철은 ‘충돌과 반동’, ‘적막강산’, ‘도시의 징후’에 채색한 먹의 기운을 농암종택의 적요한 풍경에 적선했다. 그는 겨울의 막바지를 맞은 차디찬 자연의 속살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 루만지고 가다듬어 평화와 안위의 시공간으로 치환했다.
먹의 사위가 드리워진 사진의 표상에는 삶의 공동체가 이룬 적선의 흔적과 징후가 농후하다. 특히 한지 인쇄 기법으로 재현한 이미지는 흑색의 질료를 파고들어 추상의 사유에 안착한다.
그가 농암종택의 둘러싼 자연과 공간의 사물에서 포착한 찰나의 순간은, 적선의 성리(性理)를 일구고 축적한다. 닳고, 사라지고, 여물고, 흩어지는 풍경의 그림자는 먼 바다를 떠다니는 돛단배의 적요와 망각의 시간을 배태했다.
동양의 산수화를 그린 듯한 사진에는 마치 열반으로 이끄는 강렬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이갑철이 직격한 적선(積善)은 밀도 높은 여흑(餘⿊)의 세계에서 주어진 소명을 마감한다.

도자작가 김성철의 퇴화한 장식물 ‘호롱’이 비추는 세상은 흰빛이 조형하는 서정의 서사다, 느린 몸짓으로 일렁대는 호롱불은 공간의 후미진 곳까지 담백한 농도를 물들인다. 그것은 선한 마음이 이끄는 미세한 떨림의 감각과 호흡한다.
그는 전통적인 기물인 호롱 제작을 반복하면서 빛의 탄생과 소멸을 적시하고, 흰 사물과 붉은 불꽃의 명멸을 수행(修⾏)한다.
그 와중에 그의 손끝에 치미는 습관적 통증은 선(善)과 선(禪)이 합일하고자 하는 작가 의지의 일환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만든 이의 심상과 서사의 숨결이 잔존하는 호롱의 흰 질감은 연약함과 순진함을 상징하고, 불꽃 은 자기희생으로 세상을 밝히면서 적요의 수직성을 춤춘다.
또한 호롱불이 투사하는 사람의 그림자는 창호에 거인으로 내비쳐, 현대인에게 자신의 분신을 재발견하게 하는 감각을 선사한다. 밤의 세계에서 김성철의 호롱불이 쌓아가는 박애와 긍휼의 정서는 적선(積善)의 모태이자 무심한 사물의 몽상으로 부활한다.
이번 전시는 선(善)의 수행이 쌓여 태도가 되는 이치를 담고 있다. 작은 빛이 쌓여 어둠을 밝히 고 순간이 모여 기억이 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을 쌓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쌓아온 따뜻한 순간들을 되새기고 적선(積善)이 이루는 어진 세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