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주도 간판 '삼양라운드스퀘어' CI 리뉴얼, 바이오·헬스케어 피보팅
'서른 살' 그룹 신사업 중책…힘 빠진 '포스트 불닭' 맵탱 띄우기 안간힘
‘라면 원조’ 삼양식품은 김정수 부회장이 탄생 시킨 ‘불닭시리즈’로 성장을 거듭한 덕분에 창사 첫 ‘1조 클럽’ 입성과 1000억원대 영업이익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이제는 ‘삼양라운드스퀘어’로 간판을 바꿔 달고 바이오·헬스케어 중심의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 미래의 키는 오너 3세 전병우 상무가 쥐었다. ‘서른 살’ 젊은 오너는 라면 종가(宗家)에서 바이오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청사진이 과연 장밋빛일지는 예단하기 힘들다.
◇글로벌 매출 비중 70% 육박…'불닭의 힘'
그간 글로벌 면(麵)시장에서 K라면 대표 주자는 농심 ‘신라면’이었다. 2012년 매운 볶음면 콘셉트의 삼양 불닭이 유튜브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외국인들의 먹방(먹는 방송)과 챌린지 영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K라면 지형이 점차 바뀌었다. ‘불닭 로드’가 중화권, 동남아를 시작으로 미주와 유럽까지 펼쳐지면서 불닭볶음면은 K라면의 새로운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불닭 누적 판매량은 50억개(2023년 7월 기준)를 웃돈다. 삼양식품은 농심과 달리 해외 공장이 없다. 수출로 지금의 위상을 높였다. ‘불닭의 힘’이다.
효자 ‘불닭’을 앞세운 삼양식품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액은 8093억원으로 전년 6057억원 대비 33.6% 급증했다. 해외 매출을 5년 연속 갈아치웠다. 이 회사 전체 매출 비중의 68%에 이른다. 불닭이 해외에서 흥행가도를 달리면서 삼양식품은 창사 첫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불과 7년 전만 해도 매출액 3000억원대, 수출액은 1000억원에 못 미치는 회사였다. 삼양식품이 지난해 7월 그룹 및 지주사인 삼양내츄럴스 사명을 ‘삼양라운드스퀘어’로 간판을 바꾸고 ‘글로벌 톱(Top)100 종합식품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힐 수 있던 건 불닭의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자신감 때문이다.
삼양식품은 작년 9월 ‘삼양라면’ 60주년을 명분 삼아 그룹 비전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불닭 세계화를 이끈 오너 김정수 부회장은 “비전 선포를 계기로 식품사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변화를 주도하겠다”며 식품에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결합시켜 재도약하겠단 포부를 밝혔다. 비전 핵심은 라면사업을 근간으로 과학기술 기반의 ‘푸드케어(Food Care, 푸드와 헬스케어 합성어)’, 문화예술 기반의 ‘이터테인먼트(EATertainment)’ 양축으로 신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것이다. 즉 불닭에만 의존하지 않고 신사업 발굴로 외연을 확장해 성장을 지속하겠단 뜻으로 풀이된다.
◇29세 오너 3세의 공식 데뷔와 임원 승진
비전 선포식에는 오너 3세이자 전인장 전 회장-김정수 부회장 장남인 전병우 당시 전략기획본부장(CSO)이 등장했다. 전 본부장은 이날 “우리 업의 본질은 여전히 라면이고 라면이야말로 과학기술, 문화예술 융합의 산물”이라며 “60년 전 존재하지 않았던 라면처럼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내겠다”며 향후 삼양식품가(家)의 미래를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식품업계 젊은 오너 3·4세들이 언론에 공개된 공식 석상에 직접 자리하면서 발언까지 한 점은 꽤 이례적인 일이다.
전 본부장은 비전 선포식 직후인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임원 승진 첫 해 그의 나이는 불과 29세였다. 1994년생의 전 상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졸업 후 25세인 2019년 삼양식품 해외전략부문 부장으로 입사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에 따르면, 전 상무는 별을 달기 전부터 그룹 CI(기업이미지) 리뉴얼을 직접 추진하며 회사 변화를 진두지휘했다. 또 직속조직으로 라면 TFT팀을 신설하고 불닭에 이어 야심차게 미는 라면 신규 브랜드 ‘맵탱’ 기획은 물론 네이밍, 디자인, 광고 등 전 과정에 참여했다. 삼양애니(ANNI) 대표와 지주사 삼양내츄럴스 전략기획부문장도 맡았다.
올해 30세 ‘이립(而立)’의 전 상무는 그룹 전략총괄과 함께 신사업본부장을 겸직하면서 미래 경영전략과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주도하고 있다. 삼양라운드스퀘어 측은 임원인사 발표 때 “전 본부장의 승진은 그룹 혁신 경영을 주도하며 지속적인 성과를 이뤄낸 공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자평했다. 나이에 비해 일찍 ‘별’을 달고 중책까지 맡은 전 상무의 경영능력에 대해 그룹 차원에서 직접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고(故) 전중윤 창업주가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으로 K라면 시초를 열었고 오너 2세 전인장 전 회장과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을 통해 삼양식품을 시가총액 2조원을 웃도는 대형 식품사로 성장시켰다. 이제 삼양식품家 미래의 키는 3세 전 상무한테 달렸다.
◇전 상무의 첫 시험대, 차세대 라면 '맵탱'
요직을 맡은 전병우 상무의 경영 행보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비전 선포식에서 신사업으로 △마이크로바이옴(장내미생물) 연구를 통한 맞춤형 식품 개발 △식물성 단백질 △즐거운 식문화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 및 글로벌 커머스 구축 △탄소저감 역량 집중 등을 제시했다. 전 상무는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헬스케어’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부터 닦고 있다. 최근 그룹 R&D 조직인 삼양스퀘어랩에 노화연구센터, 디지털헬스연구센터 신설이 대표적이다. 연내 식물성 단백질을 비롯한 푸드케어 사업도 구체화할 방침이다.
이들 사업이 안정화되기까지는 장기간의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 전 상무에겐 주주를 설득하고 경영능력을 입증할 만한 당장의 성과도 중요하다. 그룹이 ‘포스트 불닭’으로 꼽는 맵탱 띄우기에 열심인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주력인 라면사업을 기반 삼아 맵탱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전 상무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맵탱은 지난해 8월 론칭한 매운 국물 라면이다. K라면 경쟁력이 ‘매운 맛’에 있다고 보고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겨냥했다. 맵탱을 앞세워 볶음면에 이어 매운 국물 라면시장에서도 입지를 다지겠다는 구상이다. 그룹은 맵탱에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김정수 부회장은 지난 2월 일본 최대 식품·유통 무역전시회 ‘슈퍼마켓 트레이드 쇼’에서 맵탱을 직접 홍보했다. 김동찬 삼양식품 대표는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 맵탱을 새로운 캐시카우(수익창출원)로 키워 매출로 증명하겠다고 공언했다.
맵탱은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 300만개를 넘어서며 분위기는 좋았다. 9개월가량 지난 현재 누적 판매량은 1600만개다. 첫 달을 제외한 약 8개월간 1300여만개 판매로 월평균 약 160만개 수준이다. 나쁘지 않은 스코어지만 출시 초기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힘이 떨어졌다. 전 상무는 이번에 배우 이이경을 맵탱 새 모델로 발탁하고 분위기 환기에 나선다. 초반 분위기를 이어가지 못해 이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맵탱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농심 ‘신라면’과 ‘신라면 레드’, 오뚜기 ‘진라면’과 ‘마열라면’, 팔도 ‘틈새라면’ 등 경쟁 브랜드 인지도와 영향력이 막강한 탓이다. 간편식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하림그룹도 최근 ‘더미식 장인라면 맵싸한 맛’으로 시장에 참전했다. 또 여름시즌은 ‘비빔면’ 마케팅이 주를 이룬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삼양라운드스퀘어 관계자는 “내부에서 (맵탱에 대한) 분위기는 좋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 네 번째 순서는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