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경영전략 수립 '브레인'…바이오·물 신사업 성과 가시화 관건
‘동양제과’가 모태인 오리온은 다양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국내를 넘어 글로벌 제과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최근 들어 후계 수업을 받고 있는 오너 3세 담서원 상무를 축으로 제과는 물론 그룹의 신(新)성장동력인 ‘바이오’로 외연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리가켐 인수’ 등 공격적인 투자로 기반은 갖춰둔 상태다. 담 상무는 리가켐 사내이사로 합류했다. 고속 승진한 30대 오너 3세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성장 지속…올해 '3조 클럽' 유력
오리온은 2019년 연매출 첫 2조원을 넘어선 이후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4년여 만인 작년에 3조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글로벌 경기침체, 원·부자재 값 상승 압박 속에서도 연결기준 매출액 2조9124억원, 영업이익 492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매출은 1.4%, 영업이익은 5.5%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전년보다 0.7%p 오른 16.9%다. 국내 식품업계 영업이익률이 평균 5~6%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리온 수익성은 무척 높은 수준이다.
오리온은 한국, 중국, 베트남, 러시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 중이다. 최근에는 인구대국 인도시장 공략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은 환율을 비롯한 불안한 국제 정세와 명절 대목 시기 차이로 실적이 다소 주춤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지난해 사상 처음 연매출 1조원을 넘긴 덕분에 전체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국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0.4% 늘어난 1688억원을 기록했다. 초코파이, 포카칩 등 스테디셀러가 성장을 견인하고 건강 지향 카테고리 ‘닥터유’의 선전 덕분이다.
올해도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경기침체 등을 감안하면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지만 그간 오리온의 성장세를 고려할 때 ‘3조 클럽’은 무난히 입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리온은 이를 위해 생산·영업·마케팅 정비로 본업 경쟁력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진천물류센터 착공에 나서며 제품 공급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매출 기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은 내수 소비둔화에 따라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벌크 매대 확대에 나서는 한편 감자플레이크 생산라인 및 감자창고 조성으로 안정적인 원료 공급체계를 구축한다. 베트남은 현재 추진 중인 하노이 공장 증축 및 생산동 신축을 연내 완료한다. 호치민에도 신규 공장 부지 매입을 추진한다. 러시아에서는 베스트셀러 ‘초코파이’ 생산라인이 증설됨에 따라 매출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신시장 인도에선 초코파이에 이어 스낵 ‘꼬북칩’ 현지 생산에 나서면서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나선다.
◇'5500억 빅딜' 바이오 신사업 밑그림 완성
오리온 핵심 신사업은 ‘바이오’다. 코로나19가 한창인 2020년 10월 중국의 국영 제약기업 ‘산둥루캉의약’과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체결을 맺으면서 바이오 시장 진출을 본격 선언했다. 오리온이 제과를 넘어 바이오로 ‘피보팅(Pivoting, 사업방향 전환)’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바이오 사업 전반을 주도하는 허인철 부회장은 당시 “그룹 신성장동력으로서 바이오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글로벌 식품·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자신했다.
약 3년 6개월이 지난 오리온은 현재 ‘오리온바이오로직스’와 중국 합작회사 ‘산둥루캉하오리요우생물기술개발유한회사(산둥루캉하오리요우)’를 중심으로 결핵백신, 대장암 진단키트, 치과질환 치료제 분야에 진출했다. 2022년 7월 중국 산둥성 지닝시에 1만5000여평 규모의 결핵백신 생산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총 900억원을 투자해 올해까지 최첨단 백신 생산설비를 갖출 계획이다. 상하이에는 임상용 실험실도 준비 중이다. 또 난치상 치과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 2상을 마무리했고 작년 6월에는 국내에 치약 개발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런 가운데 오리온은 올 초 ‘깜짝’ 인수를 발표했다. 올 1월 약 5500억원의 ‘빅딜’로 신약 개발사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리가켐, 당시 레고켐)’ 지분 25%가량을 확보한다고 공시했다. 지난달 말에는 주식대금 5485억원을 납입하고 25.73%의 지분 인수를 완료하면서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리가켐은 의약화학 기반의 신약연구개발 회사다. 특히 ADC(항체·약물접합체)분야에서 차별적인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ADC 분야에서 총 4개의 파이프라인이 임상단계에 진입했다. 현재까지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이전 계약 규모는 약 9조원에 이른다.
◇담 상무, 리가켐 사내이사 선임
오리온 3세 담서원 상무가 리가켐 사내이사로 선임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사업 중책을 맡기겠다는 시그널로 읽힌다. 오리온 관계자는 “담 상무는 리가켐의 주요 경영 사안에 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하며 사내이사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989년생의 담 상무는 미국 뉴욕대 졸업 후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서 근무하다가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했다. 이듬해 말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담 상무는 그룹 국내외 법인 경영 전략과 사업계획 수립 등을 맡으면서 ‘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그는 바이오 신사업까지 적극 관여하면서 ‘후계 수업’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한편으로는 담 상무가 허인철 부회장과 함께 바이오 사업성과를 차근차근 내면서 그룹 안팎으로 신사업에 대한 ‘확신’을 보여줘야 하는 책임감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오 사업은 특성상 인적·물적 투자를 지속해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본업인 제과와는 별다른 접점이 없다. 때문에 일각에선 ‘제과로 힘들게 번 돈 바이오로 날리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담철곤의 오리온’에서 ‘담서원의 오리온’으로 무리 없이 넘어가기 위해선 바이오 사업에서 대내외에 인정받을 만한 성과 또는 실현 가능한 미래 비전이 뒷받침돼야하는 이유다.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한 제주용암수 사업 개선도 시급하다. 2019년 11월 야심차게 선보인 신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4년간(2020~2023년, 관련법인 기준) 누적 영업적자는 143억원, 연간 매출액은 100억원대로 정체다. 국내 먹는 샘물 시장점유율 1%(업계 추정) 내외로 존재감 역시 많이 떨어진다. 담 상무가 신사업 등 그룹 경영전략 수립·실행 전반에 관여하는 만큼 ‘물 사업’ 경쟁력 제고는 또 다른 과제다.
오리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제주용암수 법인 지난해 실적에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기준을 적용하면 현금 흐름상 40억원의 흑자 운영을 유지하고 있다”며 “올해는 중국 수출 계약에 따른 청도지역 판매가 본격화되고 생산량이 확대되면서 성장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담 상무는 작년 말 기준 오리온 주식 지분의 1.23%를 소유하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오리온홀딩스(37.37%), 어머니 이화경 부회장(4.08%)에 이어 세 번째로 지분율이 높다. 또 부모인 담철곤 회장, 이화경 부회장과 함께 미등기임원에 등재됐다. 의결권 있는 주식은 48만6909주로 이화경 부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담 상무는 오리온홀딩스 지분 1.22%도 보유 중이다.
기획 두 번째 순서는 이준수 일동후디스 대표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