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토 세디요 (Ernesto Zedillo Ponce de León)전 멕시코 대통령(21세기위원회 의장), 미국 하버드대총장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Larry Summers) 하버드대 교수, ‘집 없는 억만장자’이자 명예서울시민인 니콜라스 베르그루엔(Nicolas Berggruen) 베르그루엔홀딩스 이사장 등을 비롯해 시 주석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은둔의 책사’ 왕후닝(王滬寧) 당 중앙정치국위원 겸 중앙정책연구실 주임‘문고리 권력’ 리잔수(栗戰書) 중앙정치국원 겸 중앙판공청 주임‘핵심 브레인’ 정비젠(鄭必堅) 중국 국가창신발전전략연구회 회장 등과 함께 면담한 것이다.
이들은 중국의 국가창신발전전략연구회·인민외교학회·베이징시와 21세기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제2회 ‘중국의 이해(Understanding China)’ 국제회의 참석자들이었다.
‘중국의 이해’는 정비젠 회장이 주도하고 있다. 정비젠은 왕후닝, 리잔수와 함께 시 주석의 최측근 참모다. 정비젠은 시 주석의 중국을 세계에 널리 홍보하고 세계 지도자들을 '친구'로 만들기 위한 국제회의 ‘중국의 이해’를 개최하고 있는 것이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는 내가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다 생각해 낸 것”이라며 “기본은 문화 교류이며 목적은 상호 공영으로 영토 확장의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만든 이유도 같다”고 설명했다.
정비젠은 “시대를 추월해야 중국을 구할 수 있고, 중국이 발전할 수 있다. 혁신·협조·녹색·개방·공향이란 다섯 가지 발전 이념 아래 시대 추월이라는 가치를 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시진핑 주석의 국가발전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이념이다. 그런데 왜 정비젠은 ‘중국의 이해’의 국제회의에 한국에선 박 시장과 홍 회장 두 사람만 초청했을까.
친해서. 아니다. 정비젠이 시 주석, 왕후닝, 리잔수 등과 논의해서 ‘박-홍’ 두 사람만을 초청한 것은 다분히 전략적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무엇보다 두 사람을 차기 대권과 관련해 가장 유력한 차세대 지도자로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정보력을 결코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현재 중국인 80만명 정도가 한국에 살고 있지 않는가.
중앙일보 2015년 11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홍 회장은 “일대일로가 서쪽만 향하는 개념이어선 곤란하다. 성공을 위해서는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포함해야 한다. 과거 실크로드 역사를 봐도 신라 경주에서 시작해 북한을 거쳐 당(唐) 장안,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길이었다. 경주에서 다시 일본, 궁극적으로 미국까지 아울러 지리적 한계를 갖지 않는 개념으로 확대돼야 진정한 일대일로의 의미가 있다”고 역설했다.
홍 회장은 “2030년 북극항로가 열리면 육상 실크로드, 해상 실크로드와 함께 아시아·유럽 교류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일대일로와 AIIB가 북한까지 포용한다면 당면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 회장의 발언은 중국 측 참석자들로부터 “좋은 제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홍 회장이 ‘중국의 이해’에서 제안한 ‘북극항로-육상 실크로드-해상 실크로드’는 ‘홍석현표 통일구상’의 핵심 키워드다. 실제로 중앙일보측은 이 부분에 대해 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회장은 필자가 앞서 ‘반기문 대망론’과 ‘홍석현 대망론’에서 밝혔듯이 ‘통일대통령’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원불교의 ‘비닐하우스 성자’로 알려진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종사가 홍 회장에게 ‘통일대통령’을 주문한 이래로 홍 회장은 매일 아침 1시간 정도 독서하며 ‘통일구상’을 가다듬고 있다고 한다.
대산은 1960년대 ‘용공화공구공(容共和共救共)’의 ‘3공주의 통일철학’을 제시한 바 있다. 대산이 홍 회장에게 전한 메시지는 대략 이렇다.
“모두들 멸공(滅共)을 하자고 하지만 극단으로 하면 안 되나니, 멸공보다는 반공(反共)이 낫고 반공보다는 승공(勝共)이 낫고 승공보다는 용공(容共)이 낫고 용공보다는 화공(和共)이 낫고 화공보다는 구공(救共)이 나으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남과 북이 한 형제요 동포임을 하루속히 깨달아 서로 용서하고 포용하며 화합하고 융화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하느니라.”
홍 회장은 대산의 ‘3공주의’ 가르침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통일구상’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대북포용정책’과 맥락을 같이 한 것도 바로 ‘3공주의’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통일’은 2016년 현재 시대정신이다. 30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역사 사이클로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지난 27일 ‘20대 총선과 87년 체제의 재편성’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 정당사를 연구하는 이들에 의하면 한 세대가 지나가는 30년이라는 시간은 유권자와 정당이 맺어져 있는 하나의 ‘체제’가 만들어지고 붕괴하는, 즉 재편성되는 사이클이기도 하다. 30년대의 뉴딜연합과, 60년대의 미국의 시민권 운동, 그리고 90년대의 공화당 양원 석권 등을 본다면 30년의 시간에 매우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래 ‘30년 세대론’은 인물 중심의 한국적 시대관이다. 30년이라는 한 세대가 지나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다는 시대적 관점이다. 고종(高宗) 이후의 역사를 보면 매우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승하(昇遐)했다.
일제에 의해 독살됐다는 설이 나돌아 민심이 크게 동요했고 결국 3.1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부터 194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항일독립’.
중심인물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逝去)한 김구(金九) 선생. 1949년부터 197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산업화’. 중심인물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한 박정희(朴正熙)대통령.
1979년부터 200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민주화’. 중심인물은 2009년 8월 18일 노환으로 서거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 김영삼노무현 대통령도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으나 김대중 대통령보다 시련을 적게 겪었다. 2009년부터 2039년까지 30년간의 시대정신은 뭔가. 말할 나위 없이 ‘남북통일’이다.
그렇다면 중심인물은 누구일까. 누가 ‘남북통일’을 이룰 인물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2039년은 미래다. 23년이 남았다. 그 때 어떤 인물이 서거할지 예측할 수 없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일까. 반 총장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서 남북통일을 이룬다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39년 그는 95세가 된다. 박근혜 대통령일까. 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통일을 이룬 대통령이 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홍 회장일까. 홍 회장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서 남북통일을 성취하면 중심인물이 될 수 있다. 2039년 그는 90세가 된다. 하지만 북한에서 중심인물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꼭 남한에서만 나오란 법은 없지 않는가. ‘김정은 체제’가 조기에 종식되고, 북한의 새 인물이 남북통일을 주도적으로 성사시킨다면 얼마든지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홍 회장은 ‘통일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대선에 나온다면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홍 회장은 국내 언론사 사장으로는 처음 1998년 8월 7박8일 간 북한을 방문해 노동신문사김일성대학 등에서 북한 지식인들과 통일에 대해 토론했던 것도 이 꿈과 무관하지 않다.
중앙일보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2001년 창설)을 제주특별자치도국제평화재단동아시아재단과 함께 주최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와 협력적 리더십’을 주제로 열린 제11회 제주포럼에서 홍 회장은 세계지도자 세션의 사회를 맡았다.
26일 세계지도자 세션에선 홍 회장의 주도로 한국의 한승수 전 총리와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를 비롯해 엔리코 레타 전 이탈리아 총리, 짐 볼저 전 뉴질랜드 총리,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전 총리 등은 ‘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홍 회장은 ‘아시아의 미래’가 바로 남북통일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 세션의 사회를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홍 회장은 이 자리에서 각국 정상급 전직 총리들과 토론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키우고 ‘국가경영 감각’도 간접적으로 익힌 것이다.
한마디로 중앙일보가 제주포럼에 주최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신문사 홍보보다 홍 회장 개인의 ‘대권수업’을 위한 전략인 것이다. 중앙일보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함께 ‘중앙일보-CSIS포럼’을 개최하고 있는 것도 ‘통일준비’ 이미지 제고와 ‘대권수업’을 위한 포석이다.
홍 회장이 중앙일보를 앞세워 각종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한국의 국격(國格)을 높이고 국가이미지를 제고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홍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행사들이 지나치게 지도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홍 회장이 진정 대권에 생각이 있고, ‘통일대통령’을 꿈꾼다면 보다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
민생현장에서 평범한 국민들과 스킨십을 강화해야 한다. 전국 방방곳곳 생생한 민생현장에서 민초들이 생각하는 통일방안통일생각이 무엇인지를 청취해야 한다. 서민들이 바라는 일자리와 경제가 무엇인지도 경청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은 ‘백성이 하늘’이요, ‘백성의 생각이 시대정신’이라는 얘기다. 지도자들부터 지혜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자칫 뜬 구름을 잡을 수 있다. 백성의 투박한 소리에 지혜가 담겨 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백성의 소리(분노)는 하늘에까지 사무친다(철호창궁 : 撤乎蒼穹)’고 했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제2장에서 도(道)의 여섯 가지 원리를 제시한 바 있다. 그 중 네 번째 원리가 ‘고하상경’(高下相傾 :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운다)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항상 낮은 데로 가야하고, 낮은 사람은 높은 데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높음은 낮음과의 관계 속에서 높음이 되고, 낮음도 높음과의 관계 속에서 낮음이 된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관계 속에서 대통령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없으면 대통령도 존재할 수가 없다.
국민도 대통령과의 관계 속에서 국민이지, 대통령(국가)이 없으면 식민지 백성과 같다. 세계의 전직 총리들과 토론하는 것도 대한민국의 국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낮은 데서 살고 있는 국민을 생각하고 걱정하면서 국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홍 회장은 ‘아시아의 미래’나 ‘한반도의 새로운 패러다임’도 좋지만, 먼저 국민들의 ‘무엇’이 하늘에까지 사무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체휼(體恤 : 처지를 이해해 가엾게 여기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권의 첫 걸음이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 무죄네트워크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