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조 기술금융 '속빈 강정…중기 대출 안 늘었다
9조 기술금융 '속빈 강정…중기 대출 안 늘었다
  • 온라인뉴스팀
  • 승인 2015.01.2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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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대출·갈아타기 대출' 마구잡이로 실적 넣어

9조원에 육박한다고 금융당국이 내세우는 기술금융이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하반기 기술금융 실적은 급격히 늘었지만, 정작 중소기업대출은 거의 늘지 않았다.
일부 은행은 중소기업대출이 되레 줄었다. 당국의 압박에 자영업자대출, 갈아타기 대출 등을 마구잡이로 기술금융 실적에 넣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의 창조경제 활성화 방안에 따라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기술신용대출은 당초 지지부진하다가 연말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늘어나 지난해 말에는 기술신용대출 실적이 무려 8조9천억원에 달했다.

기술신용대출은 담보나 현금 창출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를 바탕으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월별 증가액은 7월에 2천억원에도 못 미치다가 8월 5천억원, 9월 1조1천억원, 10월 1조7천억원, 11월 2조2천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12월에는 3조원마저 넘어섰다.
지난해 7월 시작 당시에는 기술금융에 회의적인 은행들이 참여를 꺼려하면서 실적이 지지부진했지만, 금융당국이 은행별 실적을 공개해 압박하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자 급격히 늘어났다.

이 같은 실적은 당초 목표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에 고무된 당국은 올해 기술금융 목표를 지난해보다 훨씬 높은 20조원으로 늘려 잡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중소기업들이 기술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규모를 수년 내 100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며 "기술금융은 기업, 금융사, 국가경제가 상생할 수 있는 1석3조의 금융"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기술금융이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외환은행 등 6대 은행의 지난해 하반기 기술금융 실적은 6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중소기업 전문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을 제외한 기술금융 실적(6조7천억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치다.

그런데, 이들 6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자영업자대출 제외)은 지난해 6월말 157조원에서 지난해 말 157조8천억원으로 고작 8천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이는 기술신용대출 증가액(5조9천억원)의 7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기술금융 실적이 1조3천억원에 달하는 우리은행은 4천여억원의 중소기업대출을 줄였으며, 외환은행도 비슷한 규모로 중소기업대출이 감소했다. 기술금융 실적이 7천억원을 넘는 국민은행은 무려 1조6천억원에 육박하는 중소기업대출을 줄였다.

기술신용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중소기업대출은 거의 늘지 않거나 되레 줄어든 이 같은 '모순'에 대해 은행 담당자들은 "정부의 독려를 못 이긴 '눈가리고 아웅'식 실적이 많다"고 토로했다.

기술금융 실적 부풀리기에 쓰인 대표적인 수법은 '대출 갈아타기'와 자영업자대출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사실 기존 거래기업이 일반대출로 받아도 될 대출을 기술신용대출로 '갈아타기'하도록 유도해 기술금융 실적을 올린 것이 많다"며 "올해도 당국이 실적을 독려하니 비슷하게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8조9천억원의 기술금융 실적 중 신규 거래기업에 대한 대출은 35%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65%는 은행들이 기존에 거래하던 기업에 대한 대출이었다. 일부 은행은 기존 거래기업의 비중이 무려 80%에 달했다.

다른 하나는 베이비부머의 대규모 은퇴와 함께 지난해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영업자대출의 활용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자영업자대출은 이들 6대 은행에서만 8조원이 급증했다. 자영업자대출을 제외한 중소기업대출이 같은 기간 1조원도 못 늘어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말로는 기술금융을 외치면서 자영업자대출에만 열을 올린 셈이다.

이러한 자영업자대출이 통계상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된다는 점을 악용해, 대부분 은행이 상당액의 자영업자대출을 기술신용대출에 끼워넣었다. 기술금융 중 자영업자대출의 비중이 10%를 훨씬 넘는 은행도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부장은 "기술평가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기술금융을 확대하라며 은행별 실적까지 매기면 어떻게 하느냐"며 "결국 일반대출, 자영업자대출 등을 다 끌어다 실적을 메울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기술금융은 1~2년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정부가 너무 '속도전'으로 나가다 보니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대출이 대부분"이라며 "국민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확대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달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온라인뉴스팀 web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