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 强달러 등 급변하는 대외환경 부담 가중
CJ 비비고·농심 신라면·삼양 불닭 공격적 영업 채비
식품기업들이 불리한 경영환경에서도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입지를 다진 덕분에 K푸드는 지난 한 해에도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갔다. 당초 작년 초만 하더라도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중동 전쟁 등 불안정한 대외 정세 탓에 K푸드 성장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럼에도 라면을 비롯해 과자, 음료, 김치, 쌀가공식품 등 여러 품목들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K푸드의 위상은 한층 높아진 모습이다.
2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해 K푸드 수출액(1~11월 농축수산식품 합산 누계)은 116억9400만달러(약 16조9282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산을 제외한 농식품 수출액은 90억5000만달러(13조1008억원), 성장률은 8.1%로 더 높다. 15개월 연속 성장세다. 대한민국 주력 수출산업으로 꼽히는 자동차, 석유화학 등이 침체에 빠진 것과 비교하면 K푸드 위상은 위기 속에서도 굳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K푸드 수출이 확대된 주요 동력 중 하나는 미국시장의 성장세다. 미국은 일본, 중국과 함께 K푸드 빅(Big)3 수출시장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금액 면에서 일본과 중국 대비 격차가 컸던 시장이었다. 4년 전인 2019년 당시 수출액은 일본 21억5830만달러(3조1244억원), 중국 16억2870만달러(2조3577억원), 미국 11억7130만달러(1조6956억원)였다. 하지만 작년 기준 대(對)미국 수출액(수산 제외한 10월 누계)은 14억4220만달러(2조1226억원)로 전년 동기보다 20.0%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일본은 5.2% 줄어든 12억7360만달러(1조8745억원), 중국은 7.0% 증가한 13억7770만달러(2조277억원)다. 미국은 이제 일본, 중국을 넘어설 만큼 K푸드의 확실한 핵심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고환율에 탄핵정국 '난항'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미국에서 성장가도를 달린 K푸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당시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천명했다. 즉 보편 관세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최대 타깃인 중국에는 60%의 고율 관세를, 다른 국가에는 최대 20% 수준의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서 현지에 무관세로 식품을 수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미국에 진출하는 국내 식품업계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보호관세는 한국과 같은 FTA 체결국으로 확대 적용이 전망된다”며 “미국 수출에 주력하는 식품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미국 대선 농업 통상정책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농식품 수출시장으로서 최근 성장률이 높은 국가”라면서도 “향후 더욱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수출통관에 대비해야 하며 대미 수출 확대를 위한 신중하고 세심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욱이 급작스러운 탄핵정국으로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선을 위협할 정도로 ‘강(强)’ 달러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수출하는 기업 입장에선 당장의 고환율이 나름의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원부자재 비중이 높은 업계 특성상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CJ제일제당·농심 신공장 조성 추진
식품기업들은 이 같은 부담과 어려움에 닥쳤지만 올 한해도 미국 식품시장에서 K푸드 바람을 이어가며 성장을 위한 행보를 지속한다.
국내 최대 식품사(社) CJ제일제당에게 미국은 해외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글로벌 최대 거점이다. 미국에만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텍사스 등 공장 20곳을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사우스다코타주(州) 수폴스에 2027년 완공 목표로 신규 공장 조성 계획을 밝혔다. 2019년 인수한 현지 자회사 슈완스를 통해서다. 북미 최대 아시안 푸드 생산공장을 목표로 초기 투자금액만 약 7000억원에 이른다. 박민석 CJ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는 지난해 11월 사우스타코타 신공장 착공식에서 “이번 투자는 미국에서 증가하는 K푸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사우스다코타 신공장을 앞세워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미국 B2C(기업 대 소비자) 만두시장 1위 지위를 더욱 굳힌다는 구상이다. 미국 가정용 만두시장에서 비비고 점유율은 40%를 웃돈다.
CJ제일제당은 만두뿐만 아니라 현지 김치 제조업체 인수를 통해 비비고 김치 생산역량을 키웠다. 북미시장에서 비비고 김치는 40% 이상의 매출 성장률(2023년)을 기록했다. 이 외에 햇반과 상온 볶음밥, 떡볶이, 즉석치킨 등 다양한 간편식들이 비비고 간판을 앞세워 미국에서 활발히 판매 중이다. 또 다른 브랜드 ‘애니천’을 통해서도 누들을 비롯한 아시안 푸드 소비 저변을 넓히고 있다.
라면은 지난해 역대 수출 첫 10억달러를 돌파하며 K푸드 최대 효자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중 미국에서의 라면 수출액(인스턴트면 포함, 2024년 11월 누계)은 약 2억3000만달러(3329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57.1%에 이른다. 이는 ‘신라면’으로 대표되는 농심과 ‘불닭’을 앞세운 삼양식품의 적극적인 영업·마케팅 영향이 컸다.
농심은 미국법인을 통해 두 개의 생산기지를 운영 중이다. 신라면만 놓고 보면 미국법인 매출은 2022년 기준 전년보다 19% 늘어나며 그 해 글로벌 매출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는 같은 해 5월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미국 제2공장 덕분이다. 제2공장으로 공급량 배가에 속도가 붙으면서 코스트코, 월마트 등 현지 대형유통체인을 중심으로 성장 폭이 컸다. 또 지난해 10월부터는 미국 내 용기면(컵라면)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신제품 ‘신라면 툼바’를 선보이며 성장을 지속했다.
앞서 2023년 7월 신동원 농심 회장은 취임 2주년 메시지에서 미국 3공장 설립과 함께 2030년까지 매출을 세 배 늘린 연매출 15억달러를 달성하면서 미국 라면시장 1위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농심은 미국 라면시장에서 일본 토요스이산(유로모니터 2021년 기준 47.7%)에 이어 2위(25.2%)다. 농심 관계자는 “1위와 점유율 차이를 감안할 때 미국시장 비전은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삼양식품은 미국법인을 통해 월마트 전 매장에 불닭볶음면을 판매 중이다. 또 코스트코 입점률은 50% 수준으로 꾸준히 높였다. 글로벌 브랜드로 떠오른 불닭을 앞세워 미국시장에서 라면과 소스, 떡볶이 등으로 제품을 다각화하는 한편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미국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해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대형 광고를 진행하는가 하면 ‘스플래시 불닭’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현지 소비자와 접점을 확대하는데 많은 투자를 했다.
이 회사는 올 하반기 가동 예정인 경남 밀양 2공장으로 미국 수출비중을 더욱 끌어올릴 방침이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밀양 1·2공장이 동시다발적으로 수출물량을 생산하면 초격차 역량 강화로 글로벌 메이저식품 기업으로서 위용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인도 반한 종가김치, 빼빼로, 처음처럼
한국인의 자부심 김치도 미국 내 K푸드 인기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김치의 대미 수출액(2024년 11월 누계)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2% 성장한 4200만달러(608억원)다. 총 수출액의 28%가량이다.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미국에서 김치세계화를 선도하는 기업은 ‘종가’로 대표되는 대상이다.
대상은 2022년 3월부터 미국 LA에 3000여평 규모의 김치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또 이듬해 미국에서 ‘서울’ 김치를 생산·판매하는 현지 식품기업 ‘럭키푸즈(Lucky Foods)’를 인수하면서 미국에서의 김치 생산역량이 배가됐다. 대상은 미국 소비자에게 한국 전통 김치의 맛을 살린 종가 오리지널을 비롯해 글루텐프리, 비건 등 현지 식문화와 트렌드를 반영한 맞춤형 김치를 내놓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사업 2030 비전을 통해 ‘모든 미국 가정에서 만나는 아시안 그로서리 기업’으로 정하고 김치를 중심으로 인지도와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롯데웰푸드는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빼빼로’를 중심으로 K과자 띄우기에 나선다. 지난해에는 빼빼로데이(11월11일) 전후로 뉴욕 타임스퀘어 TSX 브로드웨이 빌딩 초대형 스크린에 브랜드 앰버서더 뉴진스를 앞세워 대형 옥외광고와 체험행사를 처음 열었다. 행사에만 18만여명이 올 정도로 호응이 컸다. 롯데웰푸드는 미국을 중심으로 빼빼로의 글로벌 마케팅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연매출 1조원의 메가 브랜드로 육성하겠단 계획이다.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 ‘새로’ 소주와 탄산음료 ‘밀키스’로 미국 소비자 입맛을 공략한다. 롯데칠성의 대미 소주 수출액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연평균 46% 신장했다. 또 작년 상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40% 이상 증가했다. 밀키스 역시 코스트코, 크로거 등에 입점됐고 지난해 상반기 미국 매출 증가율은 34%에 달했다. 롯데칠성은 올해도 미국에서 현지 선호도 조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영업·마케팅 전략을 수립해 소주와 K탄산음료 저변 확대에 나선다.
풀무원은 캘리포니아, 메사추세츠, 뉴욕 등에 생산공장 4곳을 운영 중이다. 주력은 두부와 아시안 누들이다. 특히 두부는 미국 1위 사업자로 점유율은 70%대에 이른다. 풀무원은 앞서 2021년 11월 캘리포니아 풀러튼 두부공장 생산라인을 증설해 월 생산량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렸는데 현지 니즈에 맞춰 추가 생산시설을 검토 중이다. 아시안 누들은 프리미엄 냉장 생면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SPC삼립은 재작년 11월 미국의 아시안계 대형유통체인 H마트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이래 삼립호빵과 찜케익, 생크림빵, 약과 등 베이커리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삼립호빵은 지난해 상반기 매출 기준 126% 성장하면서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최근에는 코스트코 200여개 매장에 약과를 입점 시키며 ‘K디저트’를 현지 소비자에게 알렸다. 수출물량만 총 150여t이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