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계약을 담보로 보험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는 ‘보험계약대출’(이하 약관대출)이 고공행진 중이다. 경기 불황이 지속한 가운데 은행권에서 대출 문턱을 높이자 이에 대한 풍선효과로 약관대출을 찾는 소비자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내 22개 생명보험사가 취급한 약관대출 잔액은 61조1345억원이다. 이는 1년 전(58조3061억원)보다 4.9%(2조8284억원) 증가한 규모다. 약관대출 잔액은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불어나는 추세다.
약관대출은 보험 가입자가 보험을 해지할 때 돌려받을 수 있는 환급금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품이다. 기존 보험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해지 환급금 50~95% 범위 안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해지 환급금이라는 담보가 확실한 만큼, 낮은 위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돈을 빌리는 소비자 역시 신용도 관계없이 당일 대출이 가능한 점 등 은행보다 문턱이 낮아 급전이 필요할 경우 접근성이 높다.
이 때문에 약관대출은 비교적 서민이 경기가 안 좋은 시기에 찾는 ‘불황형 대출’로 꼽힌다.
약관대출 잔액이 큰 폭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 사정이 안 좋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은행권에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저축은행 등 대출이 본업인 제2금융권 역시 악화한 업황과 연체율 관리로 인해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면서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는 보험사 문까지 두드린 모양새다.
보험 가입자가 해지 환급금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못하면 해당 보험계약이 해지돼 손해를 입을 우려가 있다. 그런데도 약관대출 이용이 늘었다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돈을 빌리는 가계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올해 들어 약관대출 금리가 낮아진 점도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1월 국내 보험사를 대상으로 약관대출 가산금리 산정 체계를 점검했다. 그 결과 다수 보험사가 약관대출과 관련이 없는 시장금리변동 기회비용을 가산금리에 반영하는 등 불합리한 부분이 드러났다.
이에 금감원은 가산금리 산정 체계 합리화를 주문했고, 대형 보험사 위주로 약관대출 가산금리가 0.3~0.5%포인트(p) 낮아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낮아지면 대출이 증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면서도 “약관대출은 보험해약을 방지하는 효과는 있지만, 불황형 대출 성격이 있는 만큼 꾸준히 늘어나는 건 보험사 입장에서도 불안 요소”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