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편안 서둘러 발표 전망, 그룹 경쟁력 제고 가속화 예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 맞춰 또 한 번 도약하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각 기업은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 사업의 역량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본지는 국내 50대기업의 근황을 차례로 살펴보고 각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짚어본다.
올해 3월 기준 자산총계 222조원을 가진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은 ‘정의선 시대’를 공식화했지만 갈 길은 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그룹 오너십을 강화해 지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은 풀어야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양사를 합병하고 현재 있는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엘리엇 등의 반대로 무산됐다.
최근 주주총회서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현대모비스 대표이사와 기아자동차 사내이사에 올라 새시대를 예고한 가운데, 지배구조 개편안을 서둘러 발표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 수석부회장, 현대글로비스 활용해 정점 올라야
정부는 기업을 대상으로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순환출자를 금지하면서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2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그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현대차-기아자동차-모비스-현대차, 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글로비스-모비스-현대차, 현대차-현대제철-모비스-현대차 등 4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에 대한 오너십을 강화하려면 핵심인 현대차의 최대주주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모비스에 대한 보유지분이 없다.
현대모비스는 최대주주인 기아자동차가 16.88%(이하 지난해 9월말 기준)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어 국민연금공단이 9.45%,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6.96%, 현대제철 5.66%, 현대글로비스 0.67%가 주요 주주에 올랐다.
기아자동차 경우 현대자동차가 33.8%의 지분으로 최대주주며, 국민연금 6.52%, 정 수석부회장 1.7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핵심 현대차에 대한 정 수석부회장의 지분도 미미하다. 현대차는 현대모비스가 21.43%로 최대주주며, 이어 국민연금과 정 회장, 정 수석부회장이 각각 8.70%, 5.33%, 2.3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외 현대제철은 기아차가 17.27%로 최대주주며, 국민연금이 8.9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또 정 회장은 11.81%의 지분을, 현대차는 6.8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현대글로비스는 정 수석부회장이 23.29%로 최대주주다. 이어 국민연금 9.98%, 정 회장 6.71%, 현대차 4.88%, 현대차 정몽구 재단 4.46% 등이 주요 주주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선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고 기아차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이 해법으로 다시 떠오른다.
아울러, 현대모비스 지분은 외부보다 주요 계열사나 정 수석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에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전환은 낮을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캐피탈, 카드, 증권 등을 금융계열사로 두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전환 시 2년 내 금융계열을 매각해야 하는 등 일반지주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을 0.61 대 1로 결정하고 미래 경쟁력 제고를 강조했지만 무산됐다.
◇생태계 확장 집중…2023년까지 매년 9조원 투입
정 수석부회장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배력을 강화하면 현대차그룹의 경쟁력 제고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한 발 빠른 결정은 시너지를 배가시킬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까지 해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과 차량공유,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의 기술개발을 협력하면서 생태계를 확장해 왔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19일(현지시간) 인도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인 올라(Ola)에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금액인 3억달러(약 3391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하고 인도 모빌리티 시장 공략에 나섰다. 올라에 투자한 기업 가운데 완성차 업체가 투자한 사례는 현대·기아차가 처음이다.
현대·기아차와 올라는 앞으로 플릿(fleet, 데이터 기반 차량관리 서비스) 솔루션 사업 개발과 인도 특화 전기차(EV) 생태계 구축, 신규 모빌리티 서비스 개발 등에서 협력한다.
현대·기아차는 앞서 지난해 1월부터 싱가포르 그랩(Grab), 호주 카넥스트도어(Car Next Door), 중국 임모터(Immotor), 인도 레브(Revv), 미국 미고(Migo) 등 해외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 동남아시아 최대 모빌리티 기업인 그랩에는 2억7500만달러를 투자했다.
현대모비스도 최근 글로벌 업체들과 협업체계를 강화하며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나서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일 러시아 최대 인터넷 검색엔진 사업자 얀덱스와 딥러닝 기반의 자율주행 플랫폼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대모비스와 얀덱스는 인공지능(AI) 기술 기반의 완전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동 개발하고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자율주행 택시인 로보택시와 같은 무인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양사는 플랫폼 공동 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모빌리티 서비스 적용을 통해 소비자 반응을 검증하는 과정까지 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는 올해 말까지 얀덱스와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동 제작하고 성능검증을 마치기로 했다. 이 무인차 플랫폼은 이달 출시를 앞둔 현대차의 ‘신형 쏘나타’를 기반으로 제작할 방침이다. 플랫폼의 성능검증이 마무리되면 오는 내년부터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전개한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3일 AI를 활용한 사물인식, 행동패턴 분석 기술을 보유한 중국 스타트업 딥글린트와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55억원의 지분 투자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6월에는 딥러닝 기반의 영상인식 기술을 보유한 국내 스타트업 스트라드비전에 8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수소차와 전기차를 분산 투자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각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충전소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정부 규제 등이 발목을 붙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경쟁사의 경우, 전기차에 집중 투자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차의 경쟁력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형국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에 대해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수소차 시장을 잡아야 한다”면서 “수소차 관련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가운데, 친환경차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는데도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미래자동차 시장 선점을 위해 오는 2023년까지 시장 경쟁력 강화와 미래 먹거리 발굴에 연간 평균 9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연구개발(R&D)과 경상 투자에 30조6000억원, 모빌리티·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에 14조7000억원 등 총 45조3000억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본지는 다음 편에서 SK그룹의 미래 경쟁력을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