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에는 유통업계를 이끄는 롯데와 신세계가 높아진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모습이다. 좀처럼 소비심리가 회복되지 않아 당장의 출구 찾기가 여의치 않은 가운데 희망퇴직, 비용절감 등을 통해 최대한 견디며 때를 엿보겠다는 분위기다.
티메프(티몬과 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에 따른 판매업체 피해액은 약 1조3000억원에 육박하다는 정부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내 최대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는 국제 원두값 상승 압박에 2년 6개월여 만에 가격인상을 했다. 대형 바이오사(社) 셀트리온그룹은 주주 의견을 반영해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간 합병을 현 시점에서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불확실성 위기감 커진 유통 맏형들
롯데·신세계, 희망퇴직·비용절감 강도 높은 긴축경영
유통업계 맏형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비상경영 카드를 꺼냈다. 내수 부진과 미국 대선의 높아진 불확실성,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중동전쟁 확전 불안감, 중국 경기회복 지연 등 대내외 악재들이 지속된 영향이 크다. 특히 소비침체 장기화는 마트,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롯데와 신세계 입장에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발표한 7월 주요 유통업체 통계에서 오프라인 채널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0% 줄었다. 대형마트(-7.9%), 백화점(-6.4%)에서 마이너스 성장을 한 탓이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열린 올 하반기 VCM(옛 사장단회의)에서 신동빈 회장이 ‘위기’와 ‘책임론’을 언급했다. 이후 그룹 컨트롤타워인 롯데지주가 비상경영체제를 공식화했다. 이보다 앞서 계열사인 롯데케미칼과 롯데면세점은 실적 부진에 따라 비상경영을 전개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출장예산 감축 및 근태 운영 가이드라인을 공지했다. 롯데면세점은 희망퇴직, 임원 급여 삭감 등 강도 높은 긴축경영을 전개 중이다. ‘만성적자’ 상태의 롯데온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롯데그룹의 비상경영은 2018년 이후 6년여 만이다.
신세계그룹은 비상경영을 공식 선언한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 3월 정용진 회장 취임 이후 성과에 따른 ‘신상필벌’ 인사로 신세계건설을 시작으로 G마켓, SSG닷컴 등 일부 계열사 수장들이 잇달아 교체되면서 그룹 전반으로 긴장감이 크다. 주력인 이마트를 비롯해 이마트에브리데이, SSG닷컴은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 외에 CJ, KT&G, 이랜드, 동원, 삼양 등 유통업계 다른 대기업들도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분위기다.
◇티메프 판매업체 미정산 1조3000억 육박
피해업체 4만8000여개, 소비자 분쟁 2.2만명 이상
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 여파가 지속된 가운데 정부가 조사한 판매업체 미정산금액은 총 1조2790억원으로 최종 집계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본 판매업체는 총 4만8124개다. 이중 1000여개사는 1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업종별로는 디지털·가전 미정산 피해액이 3708억원으로 가장 컸다. 다음으로 피해 규모가 큰 상품권은 322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어 식품, 생활·문화, 패션·잡화, 여행 순으로 피해를 입었다.
티메프 사태에 따른 소비자 분쟁 규모는 총 2만2000여명을 웃돌았다. 2021년 머지포인트, 올 4월 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 때보다 최대 4배를 넘는 수치다. 문화체육관광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와 여행사, 신용카드사, 전자지급결제(PG사) 등 관련업계는 지난 27일 티메프 여행상품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합동간담회를 가지며 방안 마련에 나섰다.
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는 소비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8월 소비자조사동향’에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0.8로 전월 대비 2.8포인트(p) 떨어졌다. 6~7월 두 달 연속 상승했다가 하락세로 전환됐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 체감 인식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은행 측은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이커머스 대규모 미정산 사태 등의 영향으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커피 1위 스타벅스의 가격인상
그란데 300원, 벤티 600원↑…원두값 폭등
국내 커피전문점 1위 스타벅스 코리아가 이달 2일 그란데(473㎖), 벤티(591㎖) 사이즈 가격을 각각 기존보다 300원, 600원 추가 인상했다. 다만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톨(355㎖) 사이즈는 동결, 가장 양이 적은 숏(237㎖) 사이즈는 300원 인하했다. 이에 따라 아메리카노 기준 숏 3700원, 톨 4500원, 그란데 5300원, 벤티 6100원 등으로 가격이 변동됐다.
스타벅스의 음료 가격 조정은 2022년 1월 이후 약 2년 6개월만이다. 사이즈에 따라 가격을 조정한 건 스타벅스 코리아 창사 이래 첫 시도다. 또 홀빈 원두 11종은 최대 2000원, 스틱형 VIA(비아) 8종은 최대 1000원 상향 조정했다. 에스프레소 샷, 시럽, 휘핑 등 옵션인 엑스트라군 가격은 기존보다 200원 추가 인상됐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대내외 가격 인상 요인을 그간 내부적으로 흡수해 왔으나 각종 직간접 비용 상승이 지속 누적되면서 가격을 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타벅스 외에도 매일유업은 RTD(즉석음용음료) 커피 ‘매일 바리스타’ 250㎖ 제품을 200원 더 올렸다. 롯데네슬레코리아는 지난달 일부 ‘네스카페’ 인스턴트커피 제품 출고가를 7% 인상했다. 커피 가격인상은 원료인 원두와 연관이 깊다. 주요 품종인 로부스터, 아라비카 모두 올 들어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aT FIS)에 따르면 지난 28일(현지시간) 런던국제금융선물거래소(LIFFE)에서 거래된 국제 로부스터 원두 가격은 t당 4926달러로 전년 동기 평균값 2637달러보다 87%가량 급등했다.
◇셀트리온그룹 2단계 합병 불발
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 양사 주주 의견 간극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합병이 불발됐다. 셀트리온그룹은 지난해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 1단계 합병에 이어 2단계로 셀트리온제약 합병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1단계 합병은 완수했으나 2단계는 무산됐다. 셀트리온그룹은 지난 16일 “두 회사의 합병 추진 여부에 대한 1단계 특별위원회 검토 결과를 토대로 두 회사 이사회가 최종적으로 현시점에서는 합병을 추진하지 않기로 결론지었다”고 발표했다.
양사 특별위원회는 합병 시너지, 재무적·비재무적 위험 요소, 자금 요소, 사업성 요소, 주주의견 등 5개 항목으로 나눠 합병 추진 타당성을 종합 검토했다. 현 시점에서 합병을 추진할 경우 각 요소에 미치는 영향과 양사 주주 이익에 반하는 점이 없는지를 중점에 뒀다. 이 과정에서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 주주들 간 의견 차가 컸다. 셀트리온 주주 다수는 반대를 한 반면에 셀트리온제약 주주들은 찬성 의견이 주를 이뤘다. 회계법인 외부 평가에서도 합병 추진 시 재무적 위험이 증가할 우려가 큰 만큼 추진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왔다.
셀트리온 이사회는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셀트리온제약과의 합병 추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만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다. 셀트리온그룹 관계자는 “양사 주주 이익이 수반되는 통합은 주주가 원하면 언제든 검토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주주 의견에 귀 기울이고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해 성장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