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도·분기 실적 악화 총대…"한동안 기조 이어질 것"
유통대기업들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주요 그룹들이 부진한 계열사 대표를 교체하면서 업계 전반에는 긴장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더욱이 이 같은 ‘신상필벌’ 기반의 상시 임원인사가 앞으로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유통대기업들은 경기침체로 초래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상시 임원인사’ 카드를 꺼낸 모습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9월 ‘2024년 임원인사’에서 40%가량을 물갈이한 데 이어 지난달 정두영 신세계건설 대표를 경질하고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신규 선임했다. 신세계건설 영업본부장과 영업담당도 정 대표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세계건설은 2023년에 전년 대비 1757억원 늘어난 1878억원의 손실을 내며 (주)이마트가 사상 최초 연간 적자를 기록하는 핵심 원인으로 꼽혔다.
이는 정용진 회장 체제 전환 후 그룹 차원의 첫 임원인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정 회장은 지난해 정기임원인사 후인 11월에 경영전략실을 개편하면서 실적과 성과 중심의 인사평가제도 구축을 강조했다. 또 내부 핵심성과지표(KPI)를 토대로 기대 실적에 미치지 못하거나 성과가 저조한 임원을 수시 평가·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신세계건설과 같은 인사가 계속 단행될 수 있다는 방증이다.
CJ그룹은 이달 CJ프레시웨이 대표로 지주사 CJ 소속 이건일 경영리더를 선임했다. 약 3년간 회사를 이끈 정성필 대표는 짐을 쌌다. 정 대표는 이번 인사에 대해 전날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CJ프레시웨이의 올해 상황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CJ프레시웨이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6.7% 감소한 105억원으로 집계됐다.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75.4% 빠진 13억원이었다.
CJ그룹은 특히 ‘2024년 임원인사’를 평소와 달리 올 2월이 돼서야 할 만큼 위기감이 큰 상황이다. ‘2023년 임원인사’가 2022년 10월에 나온 것과 비교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각 임원인사에서 그룹 양대 축인 CJ제일제당·CJ대한통운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장들을 유임했다. 다시 말해 해당 대표들이 실적 개선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깜짝 인사를 통해 언제든 옷을 벗을 수 있다는 의미다.
상시 인사는 비단 신세계, CJ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또 다른 유통대기업인 롯데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 등도 실적을 내지 못한 계열사에 대한 문책성 인사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사업을 영위하는 롯데온의 대표를 2020년 4월 출범 이후 현재까지 4년간 2번 교체했다. 이커머스 전문가인 조영제·나영호 대표 모두 수년째 이어지는 적자에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함께 단행한 첫 인사(2024년 임원인사)에서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 등 주요 계열사 대표를 변경했다. 롯데그룹이나 현대백화점그룹에서 신규 선임된 대표 모두 외형성장과 내실화라는 미션이 주어졌으며 이에 따른 인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계는 물론 전문가들은 앞으로 비정기적인 ‘신상필벌’ 인사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점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전에는 정기 임원인사로 고정화됐다면 지금은 비상경영 상황이다. 경영환경이 급변하고 기업 실적도 고저(高低) 차가 크다”며 “영업과 재무 중 더 중요한 부분에 맞춰 경영진을 교체한다면 조직에 긴장감을 주고 오너나 기업주체의 경영방침이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때문에 앞으로 이런 인사가 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