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쟁력 강조했지만 정체…함영준 회장, 사돈에 총괄 전담
황성만 오뚜기 대표이사 사장이 공식 임기 3년을 다 채워가지만 주특기인 라면과 취약점으로 꼽히는 해외사업에서 기대만큼 두각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오너 함영준 회장 사돈이 글로벌 사업을 총괄하게 되면서 황 사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형국이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황 사장의 경영능력에 ‘물음표’가 짙어진 상황에서 업계가 향후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라면 2위 발돋움 주역…수장 맡은 후 하락세
6일 오뚜기의 2023년 3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황성만 사장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회사 정기주주총회 때 재선임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
황 사장은 1990년 오뚜기에 입사해 30여년 넘게 근무한 ‘오뚜기맨’이다. 오뚜기 라면연구소장과 오뚜기라면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업계에선 ‘라면 베테랑’으로 이름이 높다. 황 사장은 라면연구소장 재직 시 ‘스낵면’과 같은 여러 히트상품을 발굴하면서 오뚜기가 2010년대 중반부터 삼양식품을 제치고 업계 2위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함영준 회장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오뚜기 제조본부장과 영업본부장, 부사장에 이어 2021년 3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오뚜기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황 사장이 새 수장이 된 만큼 오뚜기 라면사업이 탄력을 받아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다. 오뚜기의 국내 라면시장 점유율(닐슨 기준)을 살펴보면, 2019년 27.6%에서 코로나 첫 해인 2020년 26.8%, 황 사장 경영 첫 해인 2021년에는 24.4%로 하락을 지속했다. 지난해에는 24.7%로 소폭 올랐지만 올 9월 기준 23.6%로 다시 하락세다. 임기 전 해인 2020년과 비교하면 3.2%포인트(p) 줄었다. 최대 경쟁사인 농심은 같은 기간 55.7%에서 55.9%로 시장지배력을 견고히 했다. 오뚜기가 황 사장 체제 약 3년 동안 라면사업 성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딱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 가능하다.
◇'라면비책' 반응 미온…1위 못 넘은 짜슐랭·진비빔면
실제 황 사장이 내놓았던 라면 브랜드들은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황 사장 경영 첫 해 선보인 ‘제대로 된 한 끼’ 콘셉트의 가정간편식(HMR) 제품 ‘라면비책’이 대표적이다. 대형마트몰 기준 1봉지 2000원 안팎의 프리미엄 라면이다. 오뚜기가 프리미엄 라면시장 공략에 강한 의지를 내비친 제품이다. 하지만 그 해 출시 이후 3년이 다 된 현재까지 별다른 후속작을 내놓지 못할 정도로 화제성, 판매량 면에서 존재감이 낮다. 라면을 ‘서민 음식’으로 여기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높은 가격 사이에 간극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또 지난해 4월 출시한 짜장라면 ‘짜슐랭’은 물을 버리지 않은 차별화로 출시 6개월 간 2000만봉 팔리며 초반에 좋은 기세를 이어갔고 올해에는 배우 김우빈을 앞세운 광고활동도 전개했다. 하지만 짜장라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농심 짜파게티 아성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진비빔면’의 경우 황 사장 체제 직전인 2020년 선보인 제품이다. 진비빔면 또한 출시 3개월 만에 3000만봉이 팔리며 이 시장 1위 팔도비빔면을 위협하는 제품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 제품 중량을 늘리고 외식사업가 백종원, 가수 화사 등을 모델로 기용하며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면서 누적 판매 1억봉 이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팔도비빔면은 물론 후발주자인 농심 ‘배홍동비빔면’에 뒤쳐진 3위 브랜드로 밀려났다.
그나마 올 들어 ‘마열라면’, ‘컵누들 마라탕’ 등 신제품이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정확히는 각각 스테디셀러 ‘열라면(1996년 출시)’, ‘컵누들(2004년)’의 확장판이다.
◇해외소비자 입맛 잡겠다고 했지만…턱없이 낮은 글로벌 비중
황 사장 체제에서 해외사업도 별다른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작년 기준 오뚜기 총매출(3조1833억원) 대비 해외 비중은 약 10.3%다. 경쟁사인 농심은 37%, 삼양식품은 66%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황 사장은 올 3월 정기 주총에서 이를 의식한 듯 글로벌 사업경쟁력 강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끈질긴 노력으로 매출 목표를 달성하고 제품 시장점유율을 높이겠다”며 “전 세계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수요)를 반영한 마케팅 전략과 맛과 품질이 우수한 신제품 출시로 매출을 증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에 적극 대응하고 글로벌 시장 속에서 해외소비자 니즈를 신속하고 정확히 파악해 그들의 입맛도 사로잡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오뚜기의 올해 해외사업 비중은 3분기 매출 누계 기준 9.5%로 작년보다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결국 함 회장은 최근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부사장)으로 새롭게 영입했다. 김 본부장은 함 회장의 딸이자 오너 3세인 뮤지컬 배우 함연지 씨의 시아버지다. 사돈에게 글로벌 사업을 맡긴 셈이다. 김 부사장은 컨설팅 업계에 종사하며 액센츄어타이완 지사장, LG전자 BS유럽사업담당(부사장) 등을 지냈다.
오뚜기 측은 김 부사장 영입과 함께 “오뚜기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이끌 적임자”라며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사업 전략을 추진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일각에선 오뚜기의 김 부사장 영입은 그간의 글로벌 사업을 비춰볼 때 황 사장의 좁아진 입지를 뜻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말 인사철과 황 사장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김 부사장 영입은) 경고를 준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며 “라면업계 전체 실적은 호조임에도 오뚜기 라면과 글로벌만 떼놓고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