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글로벌 경제는 마비됐다. 한국 경제 역시 위축됐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코로나19 사태 종식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백신 보급과 치료제 개발 성과가 나타나면서 주요 국가들이 속속 엔데믹(풍토병화) 전환을 선언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수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신아일보>는 새로운 일상의 시작점이 될 하반기 주요 산업별 수출을 전망한다./ <편집자 주>
올해 수출 증가율은 2.3%로 예상(한국경제연구원)됐다. 26.6% 증가한 2021년(1~11월, 한국무역협회 집계 기준)보다 크게 둔화될 전망이다. 엔데믹 전환으로 세계 경제 정상화, 교역 활성화가 기대됐지만 원자재 가격·인건비 상승, 미중갈등·러우사태와 같은 외교문제, 보호무역주의 확대 등은 또 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반도체·조선·배터리 업계는 이런 외부 불확실성에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하반기 수출에 빨간불이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반도체 업계는 수출 성장세가 이어지겠지만 지난해와 비교해 둔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선·배터리 업계는 원자재 가격 직격탄에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흐림’- 수출 성장세 둔화…D램 가격하락 우려
하반기 반도체 수출은 글로벌 수요 증가와 신규 생산 라인 가동, 만성적인 부족현상 등의 영향으로 상승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등으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제조·생산·공급 분야) 업황의 호조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텔과 AMD가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인 DDR5 디램(DRAM)을 지원하는 서버용 신규 플랫폼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DDR5는 DDR4 대비 DRAM의 속도, 전력소모, 신뢰성을 개선한 제품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와 비교해서는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연구원은 하반기 반도체 수출액 성장률을 전년 동기 대비 10.7%로 예상했다. 올해 1월1일부터 5월25일까지 반도체 누적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4%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둔화세가 뚜렷하다.
산업연구원은 “개인·기업용 반도체 수요산업의 발달로 한국 반도체 수출은 하반기에도 증가세가 지속할 전망”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 주요도시 봉쇄 조치의 대외여건 악화, 전년 동기 실적호조의 기저효과 등에 성장이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DRAM을 필요로 하는 ICT(정보통신기술)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공정용 희귀가스 수입 비중의 30~50%가량을 차지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네온 수입 가격이 올해 1~2월 기준 156% 상승했다.
여기에 스마트폰, 노트북 같은 IT(정보기술)기기 생산과 소비가 동시 감소하면서 제조사들의 DRAM 재고도 늘었다. 수요가 줄면 반도체 거래가격이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후반부터 상승세를 탄 DRAM 현물가격이 러우전쟁 발발 후 하락세로 반전됐다. 현재까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현물가격은 고정거래 가격(반도체 생산기업이 주요 고객사에 장기로 공급하는 가격)과 맞닿은 수준이다. 현물가격이 추가 하락하면 결국 고정거래 가격도 하락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조선 ‘흐림’- 수주·후판가·러시아 3중고 악영향
조선 업계의 하반기 수출실적은 악화될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내놓은 ‘2022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조선업계 수출은 16.9%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 업계의 경우 선수금을 적게 받고 인도금을 많이 받는 헤비 테일(Heavy-tail) 방식의 계약 특성상 수주 후 2~3년 후에야 결제대금을 받는데 2019~2020년 수주 부진을 겪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9년 전 세계 연간 선박 발주량은 3059만CGT(표준선 환산톤수)였다. 2020년 세계 발주량은 2390만CGT로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2021년 들어서야 4664만CGT를 기록해 전년 대비 95% 상승하며 지난 2013년 6206만CGT 이후 8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조선 업계는 선박 제조원가의 20%가량을 차지하는 후판(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 가격 급등도 수익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했다.
조선 업계는 철강 업계와의 올해 상반기 협상에서 선박용 후판 공급 가격을 톤(t)당 10만원에서 15만원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t당 50만원 올린 데 이어 상반기에도 상승 흐름을 이어가게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에 따른 우려도 존재한다. 러시아 선주의 계약 미이행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러시아 선주로부터 수주해 건조하는 선박은 총 33척이다. 이들 LNG(액화천연가스)선 건조 이후 중도금이 기한 내 입금되지 않을 경우 실적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조선 3사가 러시아로부터 수주한 금액은 약 10조원 규모로 알려졌다.
조선 업계 한 관계자는 “원자재가 상승의 경우 변수로 작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 가격이 안정화되면 실적은 개선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아직은 상황을 면밀히 살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흐림’- 필수 원자재 수급 불확실성 확대
배터리 업계는 하반기 필수 원자재 조달의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은 공급망 다각화 전략에 나섰지만 배터리 원자재 부담은 여전하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원자재 수입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3사 리튬·코발트·망간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각각 81%, 87.3%, 99%에 육박한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면서 필수 원자재 가격도 급등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중국 상하이 봉쇄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외부 경영 리스크까지 상존하는 상황이다.
지난 3월 기준 탄산리튬 가격은 2020년 11월 대비 1086% 폭등했다. 코발트 가격도 2배 가까이 올랐다. 니켈 가격은 지난해 1월 t당 1만7000달러에서 올해 2만달러를 넘어섰다.
글로벌 원자재 이슈와 더불어 중국 CATL, BYD 등 중국산 저가 배터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누적 점유율은 26.3%다. 2위를 차지한 LG에너지솔루션은 점유율 15.9%를 기록했다. 5위 SK온은 6.6%, 7위 삼성SDI는 3.8%로 각각 집계됐다. 국내 배터리 3사 시장 점유율을 전부 합쳐도 1위인 중국 CATL(35%)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삼원계 하이니켈 배터리 등 고성능 기술 개발에 주력하며 중국산 배터리 공세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또 북미시장에서의 캐파(CAPA;생산능력)를 늘리며 글로벌 수요에 대비하고 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배터리업계들이 필수 원자재·소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내재화율을 높이는 게 관건”이며 “정부 또한 원자재 공급망 분산을 위한 외교 전략과 내재화 연구개발(R&D) 인재 육성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민제·이성은·최지원 기자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