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보단 협회 구성 통해 정부와 협력하고 기준 수립
에스크로 등 제도화…中企 위한 지원 방안 마련 시급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은 티몬·위메프(티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인한 불신이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전문가들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업계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정부의 미흡했던 규제와 제도 보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커머스 업체들은 티메프 사태 이후 자사의 빠른 정산 시스템과 재무 건전성을 적극 알리고 있다. 긴 정산주기와 꽉 막힌 자금 유동성 등으로 인한 정산대금 돌려막기가 티메프 사태의 원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티메프 사태는 지난달 17일 위메프가 셀러(판매자)들의 5월 판매대금을 정산하지 못한 것이 드러난 데 이어 같은 달 22일 티몬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업계 추산 미정산 대금만 1조원 이상에 달한다. 티메프는 법원에 회생개시와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법원은 ARS 신청을 승인했다.
이런 가운데 네이버는 배송시작 다음날 대금을 100% 지급하는 ‘빠른 정산 서비스’로 선지급한 누적대금이 40조원을 돌파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서비스는 구매확정 다음날 정산되는 일반정산(8일)보다 정산주기를 5일 정도 앞당긴 것으로 2020년 11월 도입했다. 11번가는 최근 발송완료 다음날 결재해주는 ‘빠른 정산’ 시스템의 정산예정금액 지급 비율을 90%에서 100%로 상향했다. 오늘의집은 지난해 말 기준 유동자산이 약 3604억원이며 유동비율 215% 초과했다고 밝혔다. 머스트잇도 2023년 말 유동비율 225%로 명품 플랫폼 업계 내 가장 우수한 재무 건전성을 보유했다고 피력했다.
전문가들은 ‘제2의 티메프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 스스로 재무 건전성과 투명성이 확보된 결재·정산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동일 한국유통학회 회장은 “긴 정산주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제대로 정산이 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면서 “판매자들에게 정산주기 관련 옵션을 제공하는 등 업계 자체적인 방안 모색이 먼저”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자상거래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생겨 이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면서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한다기보다는 정산주기 관련 큰 틀만 잡고 정산 주기 표준화 등 업계가 알아서 방책을 구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관계사들이 협회를 구성한 후 공정거래위원회와 협력해 기업 신용도 평가 시 판매대금 지급 기한 반영, 법적 최장 판매대금 지급 시점 설정 등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각 업체들은 판매자 대상 주요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상시·지속적으로 관계사들로 구성된 협회나 매체에 공개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관리·감독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번 사태가 상위 사업자 중심의 시장 재편에 속도를 키워 후순위인 중소기업들의 생존에 위협할 수 있어 정부가 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판매대금 지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고객 돈을 마음대로 이용한 것이 문제다.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들도 일주일 이내 정산을 하도록 에스크로(제3의 금융기관과 연계한 정산금 지급 방식) 제도를 포함해 지급방법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신뢰문제는 쿠팡이나 네이버, 알리 등과 같은 큰 업체보다는 중소기업들에 더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큰 업체를 중심의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시장경제가 살아 있으려면 중소업체도 있어야 하니 이들에 대한 신뢰성을 가져갈 수 있도록 분기별로 지표를 발표하는 등 정부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기 위해 이커머스와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에 앞서 PG업을 겸하는 이커머스 업체들을 대상으로 재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도 오픈마켓 결제대금 관리, 정산주기 단축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