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단백질·대체유·케어푸드 사업 다각화…리스크 줄이기 '안간힘'
“우유만 파는 중소기업들은 2026년 이후면 다 없어질 겁니다. 고객이 원하는 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지 못하면 그 사업은 망할 수밖에 없어요.”
국내 대표 유업체 매일유업 김선희 부회장의 얘기다. 김 부회장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저출생시대, 혁신으로 극복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김 부회장은 수입우유 증가와 저출산 등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유업계 위기가 1~2년 내 현실화 될 것으로 봤다.
김 부회장이 2026년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한 건 이 때부터 수입 유제품 관세가 ‘0%’ 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낙농업이 일찍 발달한 미국과 유럽산 유제품이 무관세로 국내 우유시장에 공격적으로 들어오면 가격 등에서 밀리는 국내 유업계가 버티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는 “20여 년 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유제품 관세는 방어를 위해 100%로 해놓고 해마다 5%씩 낮춰 2026년에는 0%가 된다”며 “그 사이 해외 낙농가 우윳값은 더 낮아졌지만 국산 우윳값은 두 배가 됐는데 (국내) 우유 수요는 줄어드는 반면 낙농가에선 여전히 우유를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유 소비침체 장기화, 6년째 매출 1조원대
우리가 먹는 우유 원재료가 되는 원유(原乳) 가격은 음용유용 기준 지난해 리터(ℓ)당 1084원으로 처음으로 1000원을 넘어섰다. 7년여 전인 2016년 922원과 비교하면 17.6% 올랐다.
원유가격조정은 정부가 구제역으로 피해가 컸던 젖소농가 소득보장을 위해 2013년부터 도입한 ‘원유가격 연동제’에 따른 것이다. 시장상황이나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닌 원유 생산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올해의 경우 최대 111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매일유업은 서울우유, 남양유업과 국내 유업계 톱(Top)3 기업이다. 서울우유가 협동조합이란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간기업으로는 국내 최대 유업체다. 그런 매일유업의 최고경영자가 우유사업을 비관적으로 본 것이다.
매일유업은 2009년 첫 매출 1조원을 넘어섰지만 코스닥 재상장(2017년) 이후를 기준으로 하면 2018년 연매출 1조3006억원으로 ‘1조 클럽’에 들었다. 이후 지난해까지 6년간 1조원대 매출에 머물렀다. 우유 소비침체 장기화와 맥을 같이 했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흰우유 기준 국내 1인당 소비량은 2001년 31.0㎏에서 20여년이 지난 지난해 25.9㎏로 갈수록 줄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발표한 국내 흰우유 시장 규모는 2020년 1조7529억원에서 지난해 1조6591억원, 내년에는 1조5000억원대로 전망된다.
매일유업의 작년 총매출(1조7830억원)에서 유가공사업(1조969억원) 비중은 61.5%다. 같은 해 총영업이익(722억원)에서 유가공사업 이익(588억원) 비중은 81.4%다. 매일유업이라는 사명처럼 우유사업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합계출산율 0명대의 저출산과 인구절벽, 소비침체, 생산비용 증가 등 위기 속에서 무관세 수입우유까지 국내에 대량으로 들어오면 김 부회장 말처럼 유업계 전반의 ‘생존’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된다.
◇신규 수익원 발굴 시급…SK와 합작 신사업 '언제쯤'
결국 수익원 다각화가 중요한 과제다. 매일유업은 우유사업 노하우를 기반으로 ‘성인단백질’과 ‘대체유’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다. 지금이야 유업체뿐만 아니라 일반 식품·제약·바이오·유통채널까지 성인단백질 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매일유업은 비교적 이른 2018년 ‘셀렉스’로 국내 성인단백질 식품시장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다. 현재는 총매출(2023년 기준)의 1/7 수준인 일동후디스 ‘하이뮨’에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으나 제품군을 꾸준히 확장하면서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셀렉스를 포함한 작년 매일유업의 기타부문 매출액은 6861억원으로 전년 6399억원보다 7.2% 늘었다.
대체유 사업은 매일두유(콩)·어메이징오트(귀리)·아몬드브리즈(아몬드) 등의 포트폴리오가 B2C(기업 대 소비자), B2B(기업 간 거래) 모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SK와 협력으로 시작한 또 다른 대체유 사업은 2년여가 다 됐지만 속도가 더디다.
매일유업은 2022년 11월 SK, 미국의 대체 유단백질 기업 ‘퍼펙트데이’와 3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국내에서 대체유 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퍼펙트데이는 세계 최초로 단백질 생성 유전자에 미생물을 결합·발효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SK는 이 같은 차별화와 시장 성장 가능성을 보고 1200억원을 투자했다. 매일유업은 3자 합작법인을 통해 퍼펙트데이의 원료를 국내로 들여와 대체유단백질을 활용한 아이스크림, 성인영양식, 유음료 등의 제품을 개발·출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후 합작사 설립이나 제품 개발 등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체 유단백질 제품 유통을 위해선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가 필요한데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허가가 완료되면 관련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일유업이 최근 식약처 출신의 사외이사를 영입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유업' 빼고 간판 교체 검토…종합식품외식기업 의지
매일유업은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건강기능식품 제조, 판매 및 수출입업’, ‘특수의료용도 식품 제조, 판매 및 수출입업’을 신규사업으로 추가했다. 이에 맞춰 5월에는 케어푸드(환자식) 브랜드 ‘메디웰’을 리뉴얼하며 이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이달에는 시니어 특화 영양조제식품 브랜드 ‘오스트라라이프’를 론칭했다.
아울러 ‘매일 바이오 제로 요구르트’, ‘피크닉 제로’ 등 제로(0) 상품군을 늘리는 한편 카페(폴 바셋), 레스토랑(더 키친 일뽀르노·크리스탈 제이드), 베이커리(밀도) 등 외식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2년여 전에 신사업 동력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콤부차(더그레잇티 콤부차) 음료는 최근 생산을 중단하면서 관련 사업을 접었다.
매일유업의 사업 다각화는 유업계 전반에 가속화된 위기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다. 한편으로는 종합식품외식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의지로 읽힌다. 매일유업(Maeil Dairies)에서 ‘유업(Dairies)’을 빼고 사명을 리브랜딩하는 얘기가 솔솔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래도 사명에 유업이 들어가게 되면 제품 및 사업 다각화 면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면을 주력으로 하는 삼양식품은 ‘삼양라운드스퀘어’, 롯데푸드와 합병한 롯데제과가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바꾼 ‘롯데웰푸드’, 발효유 중심의 한국야쿠르트가 플랫폼 기업으로 지향하고자 ‘hy(에치와이)’로 변경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사명 변경은 예전부터 논의가 되고 있는 부분”이라며 “포트폴리오 다양화, 글로벌 사업에 영향이 있을 수 있어 고민을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사명 변경은 여러 가지 고려할 사항들이 많아 아직 고민 중이다”고 덧붙였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