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도체와 필수재
[기자수첩] 반도체와 필수재
  • 장민제 기자
  • 승인 2024.05.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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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은 자동차와 달라 전면 파업에 나서기 쉽지 않습니다.”

최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의 파업 선언에 대한 업계의 반응이다. 앞서 전삼노는 지난 29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업을 예고했다. 사측과 임금협상 갈등이 원인으로 6월7일 조합원 2만8400명이 단체연차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우려를 내비친다. 반도체 공장에서 파업 시 공정 특성상 라인 가동이 잠시라도 정지되면 천문학적인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평택사업장에서 28분간 발생한 정전으로 약 5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공정 중지에 따른 피해가 큰 만큼 노조도 강경하게 파업에 나서긴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노조가 쟁의권을 획득한 상황에서 단체로 근로계약에 따른 노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강성노조로 알려진 현대차의 경우 야근 등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어느 정도 메꿀 수 있지만 반도체 공장은 멈추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전삼노가 ‘연차사용’을 통한 파업을 선언한 것도 그런 사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징검다리 휴일이라 연차사용에 부담이 없다. 또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경우 사측이 근로자들의 연차를 제한할 수 있다. 전삼노가 사측에도 칼자루를 내어준 셈이다.

다만 국가경제의 핵심 축인 반도체 산업의 안위를 이들 노사의 선의, 이성에만 맡기는 건 부담이 크다. 노사 양측이 대화를 통해 합의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게 최선이지만 이미 파업의 문이 열렸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사태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6%에 달한다. 전년 동월대비 56.1% 증가하며 국가경제를 이끌고 있다.

정부가 반도체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건 어떨까. 필수공익사업은 업무를 중단할 경우 국민경제에 여파가 큰 산업으로 철도, 항공, 수도, 전기, 가스, 석유정제·석유공급, 병원, 통신 등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파업이 발생해도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필요 최소한의 유지·운영할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아니면 전삼노가 직접 나서서 반도체 분야는 파업을 하지 않거나, 파업을 하더라도 최소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먼저 약속하는 건 어떨까. 전삼노는 ‘임금 인상 6.5%, 격려금 200%’ 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업무처우 개선이 우선이라고 꾸준히 주장 중이지만 여론은 그리 좋지 않다. 삼성전자가 실적 부진에 HBM 경쟁력도 SK하이닉스에 밀린 탓이다. 선제적 대응으로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