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본에 팔려나가는 '라인', 팔짱 낀 한국
[기자수첩] 일본에 팔려나가는 '라인', 팔짱 낀 한국
  • 윤경진 기자
  • 승인 2024.05.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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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일본 총무성의 네이버의 '라인야후' 지분 매각 행정지도는 의아함이 먼저 든다. 행정지도라는 게 법적 강제성이 없는 조치라는 게 일본 정부의 설명이지만 관례상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은 기업도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메신저 플랫폼 '라인'의 개인 정보를 유출했다는 이유로 네이버에게 라인 운영사인 라인야후 지분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에서 라인은 한국의 카카오톡에 버금가는 국민 메신저 앱이다. 단순한 메신저 앱을 넘어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슈퍼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특히 일본뿐만 아니라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널리 사용하며 아시아 대표 앱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이용자에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정보 공유, 다양한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중요한 도구인 '라인'은 네이버의 신성장동력이자 내수 회사라는 틀을 깨고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게 만들어 준 디딤돌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공공서비스까지 라인을 통해 제공될 정도로 국민 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앱이다.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을 단지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이유로 매각하라는 요구는 국제통상법상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며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네이버에 보이는 압력은 단순히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넘어 일본 내 외국 기업에 대한 경계심과 자국 기업 보호주의가 자리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는 아쉽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가 한·일 외교문제로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다. 외교부가 일본 정부에 한국 내 반일 여론을 잠재워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자국 기업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일본의 압력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지만 이는 보다 강력한 대응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사건은 한국과 일본 간 지정학적, 정치적 관계를 넘어 글로벌 경제 시장에서도 공정성과 신뢰성을 시험하는 사건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은 공정한 규칙과 신뢰를 기반으로 이뤄져야 한다.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압력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훼손하고 시장경제에도 맞지 않는 처사다. 앞으로 다른 국가와 기업에게도 부정적인 선례를 남길 수 있다.

특히 일본은 라인뿐 아니라 SK하이닉스를 향해 노골적으로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WD) 합병에 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8년 4조원을 들여 키옥시아 지분 19%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키옥시아와 WD 합병 시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를 뛰어넘게 된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자신의 경쟁자를 키우는 합병에 반대하는 게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제2의 라인'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전 세계 경제 시장을 봐서도 이번 일본 정부의 행동은 합리적이지 않다. 한국 정부 역시 자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더 강력한 대응을 통해 국제 경제 환경에서 공정성을 유지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지 한국에 훌륭한 기업이 생겨나고 유지된다.

you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