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조정본부와 업무 중첩, 핵심기능 이관 가능성…내부서 '옥상옥' 불만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의 핵심 공약이자 취임 일성으로 강조했던 ‘미래전략실’이 이르면 내달 안에 설치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른바 과거 삼성그룹의 막강 조직이었던 ‘미전실(미래전략실)’처럼 강 회장은 중앙회와 계열사는 물론 지역 농·축협 전반을 컨트롤하면서 중장기 비전 등 농협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는 핵심조직으로 미래전략실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신설되는 미래전략실이 그간 농협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던 기획조정본부와의 업무 분담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관건이다. 미래전략실로 핵심 기능이 쏠릴 경우 기존 기획조정본부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 미전실 설치는 조직 개편과도 맞물린다. 때문에 농협 내부가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9일 농업계에 따르면, 강호동 회장이 최근 주재한 경영전략회의(종합경영분석회의)에서 미래전략실 설치를 올 상반기 내에 마무리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의 미래전략실 설치는 강 회장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미래전략실 역할은 농가소득, 쌀값, 고령화 등 농정 현안에 즉각적인 대응과 지역 농·축협 지원 효율성 제고 등 범농협 전반의 이슈를 조율하고 아우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골자다.
강 회장은 올 1월 당선 이후 지난 3월 11일 공식 취임한 자리와 같은 달 21일 열린 제3차 정기대의원회에서 미래전략실 설치를 잇달아 언급했다.
그는 취임식 당시 “미래경영, 조직문화 혁신이 시급하다”며 “미래 경영환경을 대비한 중장기 발전 전략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중앙회와 농·축협 성장과 혁신을 주도하도록 하겠다”며 미래전략실 설치를 공식화했다. 그는 특히 미래전략실 역할에 대해 “농·축협 중장기 성장 전략을 수립하고 범농협 미래 성장동력 및 전사적 리스크 관리를 총괄하도록 하겠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제3차 정기대의원회에서도 “삼성의 미래전략실처럼 지역 농협과 중앙회, 자회사를 컨트롤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임인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장의 캐치프레이즈는 ‘함께하는 100년 농협’이었다면 강 회장 체제에선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통해 허리띠를 열 번 졸라맨다는 심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을 만들어야 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 농협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누차 강조했다. 그는 또 “농·축협 위상을 제고하고 사업을 활성화하는데 중앙회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중앙회 모든 사업은 농업인 조합원과 농·축협 입장에서 추진하도록 체제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즉 새로움, 변화, 혁신이 키워드다. 이 같은 키워드를 현실화하는 역할은 향후 미래전략실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농협의 미전실 설치는 강 회장의 최근 발언으로 속도가 붙는 모양새다. 농협은 미래전략실 신설을 위한 자체 TF(태스크포스)를 이미 꾸렸다. TF는 지난 3월부터 운영돼 미전실 설치에 따른 기대효과, 운영방향, 관련 비용 등을 연구 중이다. 다만 아직 어떤 형태로 신설될지 공식적으로 드러난 건 아니다.
농협 관계자는 “미래전략실은 가칭으로서 정확하게는 명칭이 확정된 건 아니며 조직 구성, 인력 배치, 운영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들이 현재 공유되거나 지시나온 건 없다”면서도 “중앙회장이 얘기한 부분인 만큼 미전실 설치는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전략실이 설치되면 기획조정본부와의 업무 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기획조정본부는 여느 대기업들의 기획전략실, 비서실 등과 마찬가지로 농협 전반의 미래 전략·기획 수립과 총무, 인사 등을 맡고 있는 핵심이다. 기획조정본부는 기획실, 인사총무부, 비상계획국, 농협인재개발원으로 구성됐다. 강 회장 의지를 감안할 때 미전실로 기획조정본부 핵심 기능이 이관되고 중앙회장 의중을 잘 파악하는 인물이 미래전략실을 이끌 가능성이 크다.
미전실과 기획조정본부 간 업무, 특성은 비슷하겠지만 적어도 강 회장 체제에서 미전실 입김은 커지고 기획조정본부 위상과 규모는 자연스레 떨어지게 된다. 농협 내부에서 미전실 설치를 두고 ‘옥상옥(屋上屋)’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농협 내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미래전략실 설치는 조직 개편과도 맞물린 만큼 농협 내부 분위기가 약간 뒤숭숭한 상황”이라며 “내부에서 충분히 수긍할 수 있도록 강 회장의 소통과 설득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