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성장기회' 직급파괴 두고 오너 3세 승진 불편한 시선도
미래 경쟁력 제고를 정조준한 CJ그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재현(62·사진) CJ 회장이 강조한 ‘2023 중기비전’이 그룹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형국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3일 ‘CJ의 미래와 인재’ 주제로 ‘2023 중기비전’을 공개했다. 이 회장이 전 임직원에게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건 11년여 만이다. 이 회장이 밝힌 중기비전은 ‘미래’와 ‘인재’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단 게 골자다. 다만 일각에선 오너 3세인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의 임원 승진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용이 아니냐는 주장도 새나온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재현 회장이 선언한 ‘2023 중기비전’은 100일이 지난 가운데, CJ제일제당 등 주력 계열사는 신사업 확장과 경쟁력 제고에 공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회장은 초격차 역량 확보를 위해 젊고 유능한 인재 육성에 초점을 맞춰 파격적인 조직 혁신을 단행하고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최근 3~4년 새 CJ가 정체의 터널에 갇혔고 새롭게 도전하려는 조직문화를 갖추지 못해 미래 대비에 부진했다며 반성했다. 또 격변하는 시기에서 그룹 전반에 ‘대변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래’와 ‘인재’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단 주문을 했다.
이 회장은 제3의 도약을 향한 4대 성장엔진으로 문화(Culture)와 플랫폼(Platform), 건강(Wellness),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제시했다. BT(생명공학)와 IT(정보통신) 중심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위해 2023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단 ‘대담한 계획’도 밝혔다.
이 회장은 중기비전 발표에서 “각 계열사는 지속적인 선택·집중 전략과 투자 계획을 철저히 실행해야 한다”며 “그룹은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일제당·대한통운·ENM, 4대 성장엔진 장착 속도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 CJ ENM 등 주력 계열사들은 저마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한 미래먹거리 발굴과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최은석(55) 대표 체제 2기에 접어든 제일제당은 주력인 식품에서 BT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그룹 4대 성장엔진 중 하나인 ‘웰니스’에 맞춘 전략적 포석이다.
건강기능식품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차세대 치료제 중심의 레드바이오(제약·헬스케어)를 확장해 개개인의 맞춤형 토털 건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글로벌 레드바이오 시장은 2023년까지 4670억달러(업계 추정 약 53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정도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
최 대표는 이 회장의 중기비전 발표 직후 네덜란드 BT 기업 ‘바타비아’를 인수해 세포·유전자 치료제 위탁개발생산(CGT CDMO) 시장에 진출한데 이어 올 1월엔 건강사업부를 분리해 자회사 ‘CJ웰케어’를 설립했다.
CJ웰케어는 유전자 분석 데이터를 보유한 EDGC·케어위드 등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해 생애주기별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중점적으로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10월 인수한 마이크로바이옴(체내 미생물·유전자) 전문기업 ‘천랩’에 기존에 보유한 레드바이오 자원을 통합한 ‘CJ바이오사이언스(CJ바사)’를 지난달 출범했다. CJ바사는 코호트(Cohort, 비교대조군 방식 질병연구) 확대와 글로벌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빅데이터 확보를 통해 바이오-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나서며 그룹 신사업의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
2025년까지 파이프라인 10건, 기술수출 2건 보유와 함께 면역항암·자가면역질환 치료용 신약의 미국 FDA 임상 진입도 목표로 했다.
대한통운 역시 강신호 대표(61)가 유임된 가운데 2025년까지 2조5000억원을 투자해 ‘혁신기술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단 미래비전을 발표했다. 이(e)커머스와 택배 플랫폼 확장, 로봇·AI·데이터 중심의 첨단기술 확보가 골자다. 이 또한 그룹의 4대 성장엔진 중 하나인 플랫폼과 연관이 깊다.
내년까지 수도권 이커머스 핵심거점과 3온도(상온·냉장·냉동)센터를 추가 구축하는 등 융합형 풀필먼트 인프라를 지금보다 8배 수준으로 확장한다. 융합형 풀필먼트엔 자율주행 로봇을 활용한 자동화와 AI·빅데이터 기반의 예측운영 역량을 더해 미래물류를 이끌어갈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단 계획이다.
대한통운은 이후 군포물류센터에 128대의 무인운송로봇을 투입했고, 지난해 말엔 미국 텍사스 물류센터를 통해 AMR(Autonomous Mobile Robot, 자율주행 이송로봇) 등 맞춤형 자동화 로봇기술 도입을 위한 현장시험을 진행했다.
강호성(58)·허민호(58) 체제의 ENM도 글로벌·콘텐츠 강화에 초점을 맞춰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에 영화 ‘라라랜드’로 유명한 미국의 할리우드 제작 스튜디오 ‘엔데버 콘텐트’와 M&A(인수합병) 절차를 마무리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수금액만 9300억원에 달한다. 앞서 지난해 12월엔 미국의 4대 메이저 종합 미디어 기업인 ‘바이아컴CBS’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ENM은 전 세계 대중문화 중심지인 미국에 제작 기지를 마련하면서 기획·제작 역량과 콘텐츠 유통 경쟁력을 단숨에 확보했단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이 회장이 강조한 ‘글로벌 문화영토 확장’에 적극 부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CJ 관계자는 “중기비전을 오랜 기간 준비했고,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과 앞으로의 미래방향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해 4대 미래성장엔진 키워드를 도출했다”며 “3년 내 매출 성장의 70%를 미래성장엔진에서 창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MZ세대 '하고잡이' 겨냥 인사 혁신…불만도 존재
이 회장은 그룹의 미래성장엔 최고의 인재와 혁신적 조직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준비된 ‘하고잡이(일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 싶고 일하고 싶고 같이 성장하는 CJ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다른 기업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보상도 약속했다. 이 회장이 중기비전에서 가장 강조하고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이 회장의 공언은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일단 ‘직급 파괴’가 가장 눈에 띈다. 제일제당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직급을 7단계에서 3단계로 줄였다. 대한통운도 올 들어 7단계에서 4단계로 줄였다. ENM은 직원 직급은 사라지고 직무만 남게 됐다.
또 올 1월부턴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사장부터 상무대우까지 6개의 임원직급을 ‘경영리더’ 하나로 통합했다. 벤처·스타트업으로 출발하지 않은 기존의 일부 대기업에서 임원 직급을 2~3단계로 축소한 사례는 있었지만 사장급 이하 임원들을 단일 직급으로 통합하는 것은 CJ가 처음이다.
CJ의 직급 파괴는 특히 미래성장 주체가 될 MZ세대가 원하는 ‘공정한 성장기회’를 구현하기 위한 의지로 분석된다. 실제 CJ그룹의 2021년 말 기준 전체 MZ세대 구성원 비중은 75%로 4년 전인 2017년의 65% 대비 10%포인트(p) 늘었다. 이중 90년대생 비중은 같은 기간 22.1%에서 37.3%로 15%p 증가했다. 임원직급 통합 역시 체류 연한과 상관없이 부문장이나 CEO(최고경영자)로 조기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게 CJ의 설명이다.
이 외에 계열사 간 이동을 가능케 하는 ‘잡 포스팅’과 ‘거점 오피스’ 제도도 있다. 잡 포스팅은 원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은 직원에게 도전 기회를 제공하고자 도입됐다. 거점 오피스는 현재 수도권 주요 계열사 사옥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앞으로 경기, 제주도 등지로 확대될 계획이다. 이 제도들은 하고잡이 인재에게 자율성을 부여해 최고의 역량을 끌어내기 위한 조치다.
CJ는 또 제일제당·ENM·올리브영 등 3개 계열사 임원을 제외한 전 직원들에게 이례적인 특별 성과급을 지급했다. 제일제당과 올리브영은 연봉의 5%, ENM(엔터 부문)는 3.3%의 인센티브율이 적용됐다. 정규 성과급과 별개로 전 직원에게 특별 성과급을 지급한 건 CJ 창사 이후 처음이다. 세 곳의 계열사들이 사업구조 혁신 등 내부 목표치를 웃도는 성과를 낸 것으로 판단해 결정한 조치로 알려졌다.
다만 이 회장의 중기비전 발표 후 CJ의 인재 육성 정책을 두고 내부 불만도 존재한다.
CJ의 인사제도 혁신안 발표 이후 블라인드 등 일부 커뮤니티에선 정작 중요한 ‘연봉 인상’ 등은 빠진 보여주기식 인사 개편이란 주장들이 제기됐다. 직급제 폐지를 단행한 CJ ENM에선 사내 직원들 의견 수렴 없는 일방적 개편이란 불만도 쏟아졌다.
CJ의 임원직급 통합과 MZ세대 중심의 인사 개편은 오너 3세인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를 위한 명분용 작업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32)는 90년대생으로 지난 정기 인사에서 CJ제일제당 부장에서 경영리더로 승진했다. 그만큼 권한이 커진 셈이다. 이를 두고 직급 파괴가 아닌 ‘나이 파괴’란 비아냥도 나온다. 누나이자 장녀인 80년대생 이경후(37) 역시 ENM 경영리더(부사장)다. 공교롭게도 남매가 재직 중인 제일제당과 ENM은 그룹의 특별 성과급 수혜를 받았다.
관련업계 한 관계자는 “CJ의 인사 혁신 발표 이전에 2030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 건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불만을 가진 직원들 입장에선 승계를 이을 장남 승진을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CJ는 인사혁신 발표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과정이 있었고, 특별 성과급 지급은 직원들의 보상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내부 MZ세대 직원 샘플(표본) 그룹과 외부 전문가, 잠재적 그룹 일원이 될 대학생 그룹 등 다양한 인터뷰를 근간으로 인사 혁신안을 만든 것”이라며 “특별 성과급도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한 직원들의 보상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