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특정 콘텐츠나 인터넷 기업을 차별·차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망중립성 정책이라 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오픈인터넷규칙을 발표해 차단금지, 차별금지, 우선전송금지 등 망중립성 원칙을 규정했다. 그렇지만 지난 2017년 12월14일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발표한 오픈인터넷규칙을 인터넷자유회복이라는 기치 아래 폐기했다. 이에 따라 ISP는 통신사업자가 아닌 정보사업자로 분류돼, 차단금지, 차별금지, 대가에 따른 우선전송 금지 등의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다.
현재의 인터넷 상황은 망중립성 논의가 등장한 시대에 비해 급격히 변화하고 있으며, 4G 시대를 지나 5G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지금은 망중립성을 불가변의 원칙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측면이 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오바마 정부 당시 오픈인터넷규칙을 발표하면서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통신사들의 투자 위축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망중립성 도입 이후 통신사들의 투자는 감소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망중립성 원칙 폐기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과 상통한다. 트럼프 정부는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함으로써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한 망 사업을 활성화해 경기를 부양시키고자 하고 있다. 영토가 광활한 미국의 경우 망에 대한 투자는 인프라 투자로서 의미가 있으며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망중립성 원칙 폐기에 따라 인터넷 자율성의 침해, 소비자 후생의 감소, ISP의 각종 횡포 증가 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 또한 사실이다.
망중립성과 관련해 우리나라도 규제 체계를 정비해 왔다. 즉 ‘망중립성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과 ‘통신망의 합리적 트래픽 관리·이용과 트래픽 관리의 투명성에 관한 기준’이 시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가이드라인과 기준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망중립성 논의는 인터넷 망의 중립적 운영과 관련한 원칙을 설정하는 것 뿐만아니라 이용자의 보호는 물론 망에 대한 투자재원, 인터넷망 상호접속, 망 개방 등을 아우르는 매우 포괄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최근 방송통신시장에서의 시장지배력은 ISP에서 플랫폼사업자로 이동하고 있는바, ISP에 의한 경쟁제한 행위의 가능성도 함께 감소하고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 시장의 성숙기에 경쟁 활성화와 소비자 후생 증진을 위한 취지로 도입이 모색됐던 망중립성에 대한 규제는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한편 국회에는 망중립성 원칙을 강화해 법률로 규정하고자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2002121)이 발의돼 계류 중에 있다. 국회는 방송통신시장의 변화, 트럼프 정부의 동 원칙 폐기 이유 및 이용자의 복리 증진 등을 고려해, 동 법률안에 대한 검토와 심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회는 망중립성 원칙과 같은 사전규제보다는 ISP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이나 소비자보호법 등에 의한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입법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오일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
※ 이 글은 어떠한 기관, 조직이나 단체의 입장이나 의견과는 관련 없는 순수한 개인적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