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도 경악 "이런 회사가 있다니…로비스트 뽑는 거냐"
이력서에 재계 및 정계의 인맥을 기록토록 하고 입사자로 하여금 이를 이용한 매출기여까지 유도해 온 것으로 알려져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사회 전반에 능력 중심의 공정채용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시대적 '불공정 채용'의 대표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25일 현재 서희건설은 본사 및 건설현장의 신입·경력사원 채용을 진행 중이다.
본사 인사관리 신입직원 1명과 법무·회계·금융담당 등 경력직 5명을 뽑고 있다. 건설현장 신입·경력직원은 상시채용형태로 00명을 모집 중이다.
그런데 서희건설이 요구하는 온라인 이력서 양식에서 다른 기업에선 보기 어려운 특이점이 발견됐다. 재계 또는 언론계, 정치계 등의 지인을 기록토록 한 것이다.
'각계지인기록서'로 명명된 해당 항목은 지인이 △재계 △학계 △언론계 △정치계 △종교계 △문화계 △기타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선택하게 한 후 △성명 △근무처 △직무 △직위(급) △관계 △특이사항 등 상세한 인적사항을 적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이력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능력 중심의 공정한 채용'은 물론 '공정경쟁 정신'에 정면 배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관계자는 "지원자에 대한 정치적 관계 등을 모두 조사한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보지 못한 너무 비정상적인 행태"라며 "정치적 관계라든지 재계하고의 커넥션을 확인해 이것을 활용해보려고 하는 목적인지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온라인 채용 전문 회사 인크루트 관계자는 "아예 소기업이나 확인하기가 좀 까다로울 수 있는 규모의 기업들에선 어떤지 모르겠지만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할 수 있는 기업들은 이런 이력서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을 것"이라며 "대부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데 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각계지인기록서에는 '상기 지인이 매출 기여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추천인에게 주어짐'이란 문구까지 삽입돼 있다. 입사지원자로 하여금 지인 기재를 독려하거나 지인관계의 적극적인 활용을 유도하는 듯한 문구다.
경실련 경제정책팀 관계자는 "이것은 말 그대로 그 사람들을 이용해서 유착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완전히 로비스트를 뽑는 이력서 같다"고 비판했다.
또 전국건설기업노조 관계자는 "이런 이력서가 돌아다닌다는 것이 상당히 당황스럽다"며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지인들이 매출에 기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서희건설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서희건설 인사팀 관계자들은 모집인원 등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선 거리낌 없이 답했지만 민감한 질문이 시작되자 돌연 "채용담당자가 부재중"이라든지 "대외적으로는 홍보담당자 외에는 말을 할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서희건설 인사팀 관계자는 "아마 예전 양식을 수정하지 않고 그냥 놔두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도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양식자체는 인사팀에서 만들지만 제가 채용담당자가 아니라서 정확히 거기에 뭐라고 올라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렸다.
홍보담당자들은 한 술 더 떠 수차례의 전화와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한편 국회에선 이 같은 이력서를 법적으로 제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공정한 채용을 추구하는 사회적 인식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법망을 피해 불공정 채용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0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삼화 의원은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해당 개정법률안은 채용을 위한 기초심사자료에서 용모와 키 등 신체적 조건과 관련된 정보는 물론 출신지역과 종교 등 개인 고유의 신상정보, 가족의 학력 또는 재산 등의 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는 각계지인기록서라는 것을 받아도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없어서 (채용시) 불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없도록 하고 관련 처벌조항을 만들었다"며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되면 이런 이력서는 제재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또 고용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채용시 차별 등과 관련해 의원입법으로 많은 발의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부분이 정말 기업체에서 심사를 할 때 필요한 부분인지 아닌지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