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형 흑자 현상 뚜렷…담배·주류 지출만 증가
경기둔화와 노후에 대한 불안에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올해 1분기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소득에 대한 소비의 비율)은 1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소득은 찔끔 늘었지만 소비 증가폭이 더 작아 흑자가 늘어나는 '불황형 흑자' 현상이 가계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1/4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흑자액은 103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3/4분기 흑자액인 101만9800원을 넘는 역대 최고치다.
흑자액은 가구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것이다. 흑자액이 늘었다는 것은 가구가 지출할 수 있는 여력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 같은 기간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70만4000원으로 전년동월대비 1.0% 증가했지만 소비지출은 266만9000원으로 0.6% 증가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부진과 소비심리위축이 겹치면서 가계가 지갑을 닫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커지는 '불황형 흑자'의 한국경제 상황이 가계동향에도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55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0.8% 증가했다. 그러나 실질소득 증가율은 -0.2%로 나타났다.
실질소득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4분기(10∼12월)에 이어 2분기 연속이다. 지난해 4분기 실질소득은 2011년 1분기(-0.3%)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명목소득과 명목지출 증가율도 0%대에 머물렀다.
1분기 가구당 월평균 명목소득은 455만5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8% 증가지만 증가율은 지난해 4분기(0.9%)에 비해 떨어졌다.
그러나 저금리 여파로 이자소득이 줄면서 재산소득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1.0% 급감했다.
쓸 수 있는 돈이 적어지자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66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6% 증가하는데 그쳤다. 실질 기준으로는 0.4% 감소했다.
소비지출 항목을 보면 교통(2.5%), 음식·숙박(2.2%), 가정용품·가사서비스(7.4%) 등은 증가한 반면 주거·수도·광열(-3.6%), 의류신발(-1.8%), 식료품(-0.6%) 등은 감소했다.
식료품 소비가 감소한 가운데 맥주와 소주 등 주류 지출은 가격 인상의 영향으로 8.3%의 높은 증가를 보였다. 담배지출도 30.6%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주거·수도·광열 지출은 32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6% 줄었다.
그러나 유가 하락으로 도시가스 요금이 인하한 탓에 연료비가 12.2% 감소했을 뿐 실제주거비는 오히려 10.3% 증가해 가계 부담이 커졌다.
음식숙박 지출은 33만3000원으로 2.2%, 가정용품·가사서비스 지출은 10만2000원으로 7.4% 늘어났고, 오락·문화에 대한 지출(15만6000원)은 1.3%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34만9000원으로 0.6% 감소했다. 육류 지출(3.8%)이 증가했지만 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곡물(-12.4%), 유제품 및 알(-7.1%)에 대한 지출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의류·신발 지출도 15만2000원으로 1.8% 줄었고, 교육 지출(34만2000원)은 0.4%, 보건 지출(17만8000원)과 통신 지출(14만6000원)은 나란히 0.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조세(5.1%), 연금(3.4%), 사회보험(3.5%) 등의 지출은 늘었고 비경상조세(-6.0%), 이자비용(-0.4%), 가구간이전지출(-3.3%), 비영리단체로 이전(-2.8%) 등은 줄었다.
소득이 줄어 씀씀이는 물론 경조사나 기부금마저 줄였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이 거둬가는 조세나 사회보험료 지출은 '어쩔 수 없이' 줄이지 못한 셈이다.
김이한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과장은 "처분가능소득이 증대됐지만 경기 및 소비심리 부진 등의 영향으로 소비지출이 전반적으로 둔화했다"면서 "임시공휴일 지정,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 완만한 유가 상승 등으로 가계 지출 증가세는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박정식 기자 jspark@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