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계약기간 다 채웠는데 본사에서 폐점은 못해준다 하더라고요.”
서울 시내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는 한숨을 쉬며 최근 자신이 겪은 황당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기 3달 전부터 가맹계약을 종료하겠다고 본사에 요청했지만 “장비와 집기를 철거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본사가 폐점을 거부하는 것은 ‘점포 수 사수’ 때문으로 보인다. 점주는 “업계에서 점포 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본사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폐점을 막으려고 한다”며 “내부에서는 폐점 보고를 아예 못 올리게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편의점 출점 수요는 줄고 폐점 문의만 급증하는 상황이라 점주를 더 압박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편의점 본사가 점포 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통상적으로 편의점 점포 수가 매출과 직결돼서다. 점포 수가 많을수록 상품 입점 업체와 협상력이 커지고 물류비용도 아낄 수 있다. 업계에서 선두를 지키려면 점포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셈이다.
‘편의점 1위’ 경쟁도 한몫했다. 현재 업계 1·2위인 CU와 GS25는 현재 치열한 점포 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말 점포 수 기준 1위는 CU(1만7762개)고 2위는 GS25(1만7390개)다. 점포 수와 매출·영업손익은 비슷한 그래프를 그렸다. 매출로는 GS25(8조2457억원)가 CU(8조1948억원)를 앞질렀지만 영업이익에서는 CU(2532억원)가 GS25(2188억원)를 뛰어 넘었다.
국내 편의점은 포화 상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2014년 2만6000개 수준이었던 전국 편의점 개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만4875개로 급격히 늘었다. 10년 사이 2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국내 편의점 1개당 인구수는 약 900명이다.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약 2100명 정도다. 한국이 일본보다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이제 수익을 낼 수 있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편의점이 빽빽하다. 이런 상황에서 점포 수를 유지하려다 보니 기존 점주 폐점을 막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편의점 브랜드끼리 뺏고 뺏기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꼼수 출점’도 늘고 있다. 50~100미터(m) 신규 출점을 제한하는 자율 규약과 가맹사업법을 교묘히 우회해 새 편의점을 내는 식이다. 사실상 미운영 점포지만 서류상에서만 운영되고 있는 ‘유령 점포’도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 공화국의 민낯은 어둡다. 편의점 본사가 과도한 점포 수 경쟁과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보니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숫자 경쟁에 매몰돼 애꿎은 편의점 점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본사는 점포 수 경쟁에서 벗어나 가맹점주와 함께 내실 있는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