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시대’를 연 신아일보가 창간 20주년(2023년)을 시작으로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매일 접하는 정치‧경제 이슈 주제에서 탈피, ‘문화콘텐츠’와 ‘경제산업’의 융합을 통한 유익하고도 혁신적인 칼럼 필진으로 구성했습니다.
필진들은 △전통과 현대문화 산업융합 △K-문화와 패션 산업융합 △복합전시와 경제 산업융합 △노무와 고용 산업융합 등을 주제로 매주 둘째, 셋째 금요일 인사동에 등단합니다. 이외 △취업혁신 △서민기업이란 관심 주제로 양념이 버무려질 예정입니다.
한주가 마무리 되는 금요일, 인사동을 걸으며 ‘문화와 산책하는’ 느낌으로 신아일보 ‘금요칼럼’를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1월 영하의 추운 날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작은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 구석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단골 가게인 식당 사장님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이 뭔지 아냐고 물어보니 '들어는 봤지만 바빠서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한다. 크지 않은 가게지만 식당을 둘러보니 주방, 홀에서 일하는 직원이 6명 정도는 돼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이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확보의무 등 조치를 소홀히해 중대한 산업재해나 시민재해가 일어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률을 말한다.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산업재해란 △사망자 발생 △전치 6개월 이상 부상자 2명 이상 △직업성 질병자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한 산업재해를 말한다.
이 법에 의하면 중대산업재해 또는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그러한 재해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동법 제4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다 하지 못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이법에 의한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다해야 하고 이와 관련해서는 동법 제4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규정의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어렵다는 점이다.
동법 제4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에 의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중앙행정기관ㆍ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에 관한 조치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다해야 사고가 발생해도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이 법은 2021년 1월26일 제정돼 2022년부터 시행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1월27일부터 시행됐다. 10년간 중대재해의 80%(사망자수 약 1만명)가 50인 미만사업장에서 발생했다. 또한 고용노동부의 '2023년 12월말 산업재해 발생현황자료'에 의하면 사망사고 관련 산업재해 발생건수 총 584건(사망자 598명)인데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가 122명(제조업 사망자수 82명, 기타 사업장 사망자수 40명)에 달하고 동법이 적용되는 건설업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현장의 사망자수도 181명 인 점을 볼 때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동법 적용이 필요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이 법의 적용을 받게되는 50인 미만 사업장(83만개소)에 대한 정부의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1월25일 브리핑을 열어 "현장을 직접 다녀보니 많은 중소기업의 대표가 법에서 요구하는 안건보건 관리체계 구축은커녕 적용대상에 해당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2년 동안 법 시행에 대한 안내와 홍보가 부족한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50인 미만 기업 83만7000개소 중 절반 수준인 45만개소에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교육·기술지도 등을 지원해 왔다"며 그동안의 노력을 강조하였으나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나머지 40만개소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대책이 없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2024년 산재예방 예산 1조2000억원은 예년 수준일 뿐이고 사업예산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45만개 사업장에 실시했다는 안전보건관리체계 컨설팅·교육·기술지도 등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도 있다. 정부는 엄격한 처벌만을 강조할 것만 아니라 법을 준수 할 수 있도록 소규모 사업장의 산업재해 방지 준비를 지원할 수 있게 관련 예산과 인력을 더 확보해야 하고 컨설팅도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절차를 구성해야 한다. 최근 시행하고 있는 '산업안전 대진단(셀프 자가진단표 작성 후 정부 지원 신청)'도 좋은 방법이긴 하나 사업주의 자발적인 참여만 기대하기에는 경영환경이 너무 어렵다. 행정구역별로 단계적 설명회를 개최하고 참여자에게는 산재보험료 인하 등의 보상과 혜택을 주어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식당문을 나서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 사장님을 보자 무언가를 말해야 할 것 같아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수고 하세요"라는 말 밖에 남기지 못했다. 또 하나의 걱정만을 만들어 드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김진곤 노무법인 아성 대표노무사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