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이 요동치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 체제 격파를 가시화하면서다. 다만 금산분리 제도 완화와 금융결제망 이용료 시스템 구축 등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금융당국의 금융권 경쟁 촉진 방안은 금융산업혁명을 불러올 수 있지만 설익혀서는 시장 안착을 기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의 '돈 잔치' 비판에서 촉발된 '은행권 과점체제 허물기' 논의안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추가 인가 등 신규 플레이어 진입과 은행·비은행권 경쟁 촉진 등의 방안을 집중 논의하지만 대환대출 플랫폼, 예·적금 중개 서비스 등 사실상 은행권 내 경쟁 촉진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이에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의 분리) 규제 개선을 통해 더 넓은 범위의 경쟁 구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 과점체제를 허물기 위해서는 메기가 아니라 고래를 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은행권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해 △새로운 플레이어 진입 △은행·비은행권 간 경쟁 촉진 등 두 개의 큰 틀만 내세우고 있어 실효성 논란은 불거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2일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1차 회의를 열고 △스몰라이센스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인터넷전문은행·지방은행·시중은행 추가 인가 △저축은행 지방은행 전환 △지방은행 시중은행 전환 등 신규 은행 추가 인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또 은행과 비은행권 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카드사 종합지급결제 허용 △증권사 법인 대상 지급결제 허용 △보험사 지급결제 겸영 허용 △은행 중기 대출·서민금융 취급 비중 확대 △비은행 정책자금대출·정책모기지 업무 범위 확대 등을 논의했다.
다만 당장 추진되는 논의안은 금융소비자가 더 낮은 대출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플랫폼과 온라인으로 정기 예·적금 상품을 비교하고 가입할 수 있는 중개 서비스 등이다.
사실상 은행권 간 경쟁 촉진에 국한돼 있다.
실제 이날 5차 회의에서도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스몰라이센스 국내 도입과 관련해 "지급결제 전문은행의 경우에는 소비자 편익은 크지 않으나 수익성 확보 논란에 따른 건전성 문제, 수신 경쟁 강화에 따른 리스크 증대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은 은행 자산의 경기 순응성이 높아져 경기침체 시 은행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중소기업 신용평가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수익 창출과 건전성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 허용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과 은행법에 따른 건전성 규제, 금융소비자보호법·예금자보호법 등 규제차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은행권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한 금융당국의 논의안은 사실상 득보다는 실이 큰 셈이다.
앞서 27일 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인터넷은행 5주년 정책 세미나' 기조연설을 통해 "은행업은 제한된 숫자의 경쟁사들이 가격경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산을 고려해 각자의 생산량을 결정, 이에 따라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특성을 갖는다"며 "가격경쟁, 금융서비스 복잡성 등에 따라 동일한 수준의 예금과 대출 금리를 책정하는 등 동질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입장벽을 낮춰 은행 산업을 완전경쟁에 가까운 형태로 재편하는 것은 은행산업의 불안정성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경제에 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금산분리 규제개선을 통해 메기가 아닌 고래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격파하고 국내 은행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해묵은 금산분리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며 "최근 파산을 맞은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기업을 상대로 하는 은행은 유동성 위기 등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이어 "보험과 카드, 증권사 등 비은행권은 물론 인터넷은행, 지방은행 등과 함께 삼성 등 기업도 금융 관련 업무를 할 수 있게 업종 간의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며 "다만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소규모 은행의 생존을 위해서 통합·합병의 문턱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