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천양희 시인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시(詩)와 경영에 대한 얘기도 오고갔다. 시는 절제된 언어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 장르다. 시인(詩人)은 수많은 언어 중 어떤 단어를 최종 낙점할지 사색하고 고민하는 인고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기업의 경영자(經營者)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람, 자본, 기술 등 기업이 갖고 있는 자원을 극대화해 고객 감동과 기업 성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것인가 고민한다.
시와 경영은 팝콘과 벚꽃처럼 닮은 점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CEO는 많은 시를 읽는 과정 속에 ‘세렌디피티(Serendipity)’ 같은 사업 영감과 경영의 지혜를 얻는 과정도 필요하다.
천 시인이 들려주는 얘기 중 ‘공든 탑(塔)도 무너트리고 다시 쌓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는 한마디를 필자에게 들려줬을 때 귀가 번쩍했다. 우리는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에 익숙하게 젖어있다.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최면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기업 정글에서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은 통하지 않는다.
기업 평균 수명이 평균 30년인 것을 감안해보면 그렇다. 한때 잘 나가는 기업도 어느 순간 문을 닫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현재 잘 나가는 기업이 30년 후에도 여전히 최고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기 힘들다. 적어도 기업 현장에서는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이 더 유효하다는 것을 곱씹어 봐야 한다.
현재의 명성과 기업의 수명을 좀 더 연장하려면 CEO는 앞서 천 시인의 일언(一言)을 1그램(g)이 아닌 1만 톤(t)의 무게로 숙고해봐야 한다. 공든 탑을 무너트리고 다시 쌓는 심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핵심은 ‘변화’로 함축된다. 과거 습성과 패러다임으로는 현재와 미래의 강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전보다 진일보된 변화를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 변화 중에서도 ‘기업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삼성을 예로 들어보면 과거 소니 같은 회사를 목표로 이들을 추월(追越)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질주해왔다. 그런 노력으로 어떤 영역에서는 맨 선두로 달리며, 삼성의 움직임이 세계의 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역전은 달콤하고, 짜릿하다. 그러나 ‘잠깐’ 동안 머무르는 승리자가 되어선 안 된다. 선두를 지속하려면 추격(追擊) 문화에서 선도(先導) 문화로 전환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업체가 최고 자리를 탈환할 것임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선도 문화의 핵심 요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가래떡 문화’에서 ‘주먹밥 문화’ 로의 전환으로 응축된다. 가래떡과 주먹밥의 핵심 공통 재료 중 하나는 쌀이다. 하지만 가래떡은 쌀을 빻고 분쇄하는 과정에서 쌀알 고유의 형태는 완전히 사라지고 종국에는 가래떡이라는 결과물만 남는다. 반면 주먹밥은 쌀알 한 톨 한 톨 제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결과물을 완성한다.
경영학 관점에서 가래떡 문화는 개인(쌀알)의 개성은 무시한 채 조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절대적 희생을 강요하는 기업 문화를 의미한다.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우수한 인재도 ‘루저(Looser)’가 되기 쉽다. 이런 문화에서의 리더 역시 조직원들에게 명령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動) 하는 ‘명동 리더십’을 펼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주먹밥 문화는 다양한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종국에는 회사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도 극대화하는 문화를 의미한다. 제각기 다른 개성들이 뭉쳐 깜짝 놀랄만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구글, 애플이 주먹밥이 아닌 가래떡 문화를 가진 조직이었다면 깜짝 놀랄만한 작품들이 나왔을까. 주먹밥 경영 문화에서 리더는 상호 소통하고 공감대를 이끌어내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며 최상의 성과를 얻게 하는 ‘소공동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야흐로 지금은 주먹밥 문화가 기업 경쟁력의 핵심 무기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