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쌓였던 문재인 정부의 과오는 5년 만에 정권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농업계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무척 컸다. 그간 농업 전반의 예산 수립이나 코로나19에 따른 농가 피해 등 여러 면에서 만족할만한 대책과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게 농업계의 중론이다. 일례로 코로나19 초창기였던 2020년 3월 문재인 정부는 11조7000억원이라는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경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농업·농촌에 대한 예산은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여당 후보가 ‘농어민 기본소득 100만원’이란 다소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 5년간 현 정부의 ‘농업계 패싱’이 만들어낸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 발전의 근간이 농어촌이라고 강조했고, 사람 중심의 농정을 표방했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현 정부에 실망했고 투표로 심판했다.
5월10일부터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는 윤석열 정부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 2월 당시 대선후보로 참여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 주최의 토론회에서 “농업은 우리 삶의 뿌리이고 국가 기간산업이자 미래 성장산업”이라고 치켜세우며 “(대통령이 되면) 농어업·축산 정책과 예산을 직접 확실하게 챙기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당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출범했지만 농업계 인사는 찾을 수 없었다. 인수위원은 물론 전문위원 선임에서도 농업 전문가는 부재했다. 국내 최대 농민단체인 한농연이 ‘농업계 배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 유감’이란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농업계 안팎으로 새 정부에서도 농업 홀대가 이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 당선인은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한덕수 전 총리를 지명했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는 대표적인 개방론자로 알려졌다. 그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주도하며 농업계와 갈등을 빚었고, 한·중 FTA 타결 때에는 농업계가 주장했던 무역이득공유제 도입과 관련해 당시 한국무역협회장으로서 반대 입장을 내놨다. 현재 역대급 FTA로 꼽히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체결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농업계와 새 정부 간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크다.
윤 당선인은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농민들은 그 믿음을 갖고 새 정부 농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알 수 있듯 농업계 패싱, 농업 홀대의 끝은 분노였고 심판이었다. 윤 당선인은 향후 행보에 따라 농민들의 믿음이 깨지면 언제든지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