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클리셰다. 먼지가 휘날리는 서부개척시대의 프런티어(미국령의 가장 변경, 즉 막 개척돼 미국땅으로 편입된 곳)는 사실상 법보다 주먹과 총이 가까운 곳이다.
치안 능력은 제대로 미치지 못해 상식과 선의보다는 이악스러운 날것의 욕망과 이기주의만 판친다.
이런 곳에 불의가 판치자, 주민들은 가장 가까운 읍소재지 보안관이나 육군 기병대에 도움을 청하지만 깜깜무소식이다.
그때 지나가던 정의로운 건맨이 남의 마을 일이지만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수십명의 부정한 세력을 꺾고 개척지 마을에 평화와 정의가 오지만 외지인 건맨도 깊은 부상을 입는다.
사람들은 남아서 치료를 받길 권하나, 그는 자기 볼 일이 있어 굳이 다시 여행길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석양의 뒷산을 넘어가지만, 사실 다들 그가 다음 마을에 도착하기 전, 기진맥진해 죽으리라는 걸 예감한다.
이규태 기자는 명논설코너 '이규태코너'에서 이 건맨 클리셰를 다룬 적이 있다.
건맨은 떠날 수밖에, 그리고 길 위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분석했었다. 외지인의 힘으로 찾은 평화이기에, 그 외지인이 남아 주인 행세를 하며 군림하면 안 되는 게 첫 이유요, 어쨌든 법이 못 하는 잔혹한 응징을 하느라 손에 피를 묻혔으니, 그 외지인 또한 사라지고 죽어야 된다는, 일종의 인과응보 이야기다.
그러면서 기병대가 뒤늦게나마 나타나, 그가 일군 다소 불안정한 정의와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게 정의의 완성이라는 분석이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본의 아니게 대우조선해양 신임 대표 선출건으로 구설수에 오른 모양이다.
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해양 대표 후보 선출 과정은 독립된 위원회에서, 사회 저명 인사들인 위원들이 모여 다루므로 부정이나 정실인사 고려에서 자유롭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대선 직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일정한 연관성이 있는 인사를 쉬쉬해가며 새 주요 국가기간산업체 수장으로 뽑는 움직임이 있었다면, 대우조선해양 매각 책임자인 산업은행, 그리고 이동걸 회장은 이를 방치했어야 되는 것인가?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문제삼기 어렵다는 공염불이 아니라, 이런 인사는 상식과 정의 감각상 문제 있다며 브레이크를 거는 행동을 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월권 논란이 일어날 수는 있었겠다. 그러나, 남의 일에 정의롭게 권총 뽑았다가 자기도 과다출혈로 죽는 건맨 같은 처지가 될망정, 이동걸 회장이 자리를 걸고 이를 제어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지금처럼 산업은행 체면이 깎이고, 신구권력간 충돌 사태로까지 비화된 지경을 보면, 이 회장의 침묵이 떳떳하고 옳았다는 식의 비호 논리는 오히려 어불성설에 가깝다.
더군다나 이동걸 회장은 한국 기업의 조선 합병 추진을 유럽연합(EU)이 승인하지 않은 문제에 "EU의 자국이기주의"라며 "현대중공업이 EU를 상대로 세게 소송해야 할 일"이라고 일갈하는 등, 정의의 다혈질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 왔다.
다혈질 이 회장의 건맨다운 행보와 책임있는 죽음(퇴장)이 있었다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은 평화로웠을 것이다.
그렇게 저지르고 표표히 떠날 수 있는 게 바로 '주요기관 임시직원(임원)'의 멋이고 보람 아니겠는가?
그러지도 못 하면서 무슨 남의 기업에 '국제소송 충동질'은 했는지, 입싼 행보가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