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머뭇거리는 사이 7조6000억원 피해, 마사회 적자경영
관련업계 "말 산업 회복, 디지털 전환 시대에 반드시 필요"
국회에서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 논의가 재개된다. 관련업계는 온라인 마권 발매가 벼랑 끝 말(馬)산업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마중물이라고 보는 만큼 정부 방관은 더 이상 안 된다며 국회 법안 통과를 고대하고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마사회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2월23일 경마 중단을 공식화한 후 파행된 지 16개월가량 지났다. 이런 가운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는 23일 마권의 온라인 판매 허용을 골자로 한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승남·윤재갑 의원, 야당인 국민의힘 정운천·이만희 의원이 각각 제출했다. 경마 중단 장기화로 말산업이 크게 위축되자 여야 가릴 것 없이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으로 하루빨리 출구를 찾기 위해 나선 것이다.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의 국회 논의는 처음이 아니다. 4개월 전인 지난 2월에도 여야가 같은 목소리를 냈지만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를 비롯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행정안전부 등 정부가 반대하며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회의록에선 박영범 농식품부 차관과 박병홍 식품산업정책실장 등이 경마가 사행성 산업이라는 우려가 여전히 크고 안전장치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단 이유로 온라인 마권 도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말 농가당 63억원 손해, 마사회 차입경영 불가피
정부가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에 난색을 표하는 동안 국내 말산업은 코로나19에 발목 잡혀 붕괴에 직면한 상황이다. 말산업의 90%가량을 차지하는 경마가 셧다운되면서 지난해 관련 피해액만 7조6000억원(업계 추정)에 달한다. 1차 산업인 경주마 생산부터 3차 산업인 마권발매 서비스업까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말산업과 연관된 일자리 수만 2만5000여개에 이른다. 전국의 승마장을 포함해 말 생산자와 마주, 마필관리사, 기수 등은 물론, 유통업자와 음식점, 경마정보사업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마사회에 따르면, 경주마 생산 농가는 연평균 1400두의 말을 생산하고 700여두를 경매시장에 내보낸다. 경마 낙찰가는 말 생산농가의 수익원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까지 경주마 낙찰률은 30%대를 유지했으나 지난해엔 23%로 급락했고, 올해는 이마저도 못 미치고 있다. 게다가 경주마는 살아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관리비용이 계속 불어날 수밖에 없다. 1두당 연간 대략 1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마사회는 지난해 판매 감소 두수와 관리비용을 고려할 때, 생산농가당 63억원 상당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마 등 말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마사회 사정도 심각하다. 공공기관 알리오에 따르면, 마사회는 지난해 매출 1조1018억원과 46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매출액 7조3937억원, 영업이익 1204억원이다. 주 수익원인 경마 매출에서 6조3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입었던 탓이 컸다. 마사회가 적자를 낸 것은 1949년 설립 이후 6.25 전쟁 때를 제외하곤 처음이다.
마사회는 경마 매출을 통해 연평균 1조원 정도의 세금을 납부한다. 하지만 경마가 중단되다보니 세수도 바닥일 수밖에 없다. 매년 1000억원 가량을 적립한 축산발전기금은 지난해부터 내지 못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6월 현재 경마 누적 매출은 평년의 5% 수준에 불과하다”며 “그간의 유보금이 거의 바닥나 하반기부턴 대규모 차입경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온라인 마권으로 경마 매출 성장
국내 경마산업은 벼랑 끝에 몰렸지만 일본·미국 등 경마 선진국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특히 일본은 온라인 마권 발매로 더욱 성장했다. 지난해 일본의 경주마 생산두수는 2019년 대비 2% 증가했다. 경마 매출은 같은 기간 3.4% 늘었다. 매출 증가는 온라인 마권발매 영향이 컸다. 일본의 온라인 마권 매출 점유율은 지난해 90%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과 미국 등 경마 선진국들도 온라인 발매를 기반으로 무관중 경마 혹은 일부 유관중 경마를 이어가며 경마를 정상 진행하고 있다.
마사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오프라인 마권 발매만 가능하다보니 관중 입장이 제한된 코로나19 상황에선 경마 매출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라며 “일본과 미국, 유럽 등 경마 선진국이 온·오프라인 마권 발매로 말산업을 유지·보호하는 것과 대조된다”고 밝혔다. 국제경마연맹 60여개 회원국 중 한국과 말레이시아 단 두 곳만 온라인 마권 발매가 허용되지 않는다.
정부가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머뭇거리는 사이 불법 경마는 더욱 활개를 치고 있다. 마사회가 지난해 단속해 폐쇄한 불법 베팅 사이트 수는 7505건으로 전년 대비 39% 증가했다. 3년 전인 2017년의 3.3배에 이른다. 또, 지난해 신고건수는 전년보다 95% 폭증한 2648건이다.
◆축산단체, 농식품부 소극적 대처 질타
관련업계는 말산업 회복은 물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마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단 주장이다.
권광세 한국내륙말생산자협회장은 “온라인 마권발매는 현장 발매에 따른 다중운집 등 외부 위험에 노출 없이 말산업이 순환할 수 있는 수단”이라며 “당장의 말산업을 살리는 것 못지않게 디지털 전환 시대에 말산업 성장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동원 마필관리사 노조위원장은 “스포츠토토도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된 상황에서 경마만 도박으로 여기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온라인 마권 발매의 조속한 도입을 통해 말 산업 종사자들이 불안에 떨지 않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간곡하게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최근 성명서를 내고 “경마의 온라인 발매 도입은 농식품부의 소극적 대처로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며 “농축산업 발전을 위해 온라인 마권 발매 법안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