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미래' 반영한 아이디어 필요한 시점
정부가 '살고 싶은 공공주택' 만들기를 위한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획일화·고착화된 공공주택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 낼 '디자인 혁신'이 있다. 이 같은 변화를 현장에서 책임질 건축사사무소들의 혁신사례와 전략을 통해 공공주택의 미래 모습을 예상해 본다.<편집자주>
지금까지 공공주택 수요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가장 기본적인 주거공간만을 제공받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양질의 주거문화를 경험하기 쉽지 않았고, 지역 사회의 눈총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공주택의 혁신을 고민하는 이들은 "수요자들에게 보다 넓은 선택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사는 공간을 얻는 것을 넘어 자신과 가족에 맞는 주거시스템 또는 문화를 선택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에 맞춰 수요자를 선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 공공주택을 만들어가는 혁신 키워드로 '다양성'이 주목받고 있다.
◇ 장소 한계 극복하기
20여년의 역사 동안 여러 형태의 주거 프로젝트를 수행해 온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는 공공주택 디자인 혁신의 목적지로 '다양화'를 제안한다.
획일화된 공공주택에 변화를 가져 올 설계와 디자인을 추구하며, 변화의 영역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넓다.
유선은 변화 가능 요소가 건물 외관 뿐만 아니라 평면 구조, 프로그램, 주거 문화 등 여러 영역에 걸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각 영역의 변화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입주자는 물론 사회적 측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공공주택을 만들 수 있다.
가장 먼저 다양화할 수 있는 요소는 '장소'다. 도시 곳곳에 사각지대로 버려지고 있는 장소를 찾아내고, 이에 적합한 공공주택을 설계하는 것이다.
고가도로 아래 공간이나 버스 차고지, 철도 위 공중 공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음이나 채광, 안전성 등이 보통의 주거용 택지 보다 열악할 수 있기 때문에 주택 설계에 더 많은 노력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유선이 설계한 서울 '오류동 행복주택'은 장소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철도 위 공중공간을 활용한 개념으로, 철도가 갖는 소음 등의 유해환경 이미지와 컨디션을 극복함으로써 초역세권의 장점을 얻어냈다.
주거동은 철도 측면으로 배치하고, 철길 상부에 입주민과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했다. 특히, 공원은 열차 소음이 주거동으로 전해지는 것을 막고, 철길로 갈라진 도시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도록 설계했다.
◇ 아들·손자·며느리 '모두 만족'
공공주택에 조성되는 각 세대의 구조를 다양화 하는 것도 수요자의 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유선은 지난해 설계한 '수서역세권 행복주택'에 △대학생·사회초년생 △청년층 △노인·자녀 공동 △신혼부부 △고령자 △주거약자 등 각각의 수요층에 맞춘 다양한 세대 구조를 적용했다.
싱글족을 위한 세대에는 스터디룸이나 취미룸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하고, 신혼부부 맞춤 세대에는 엄마와 아이를 위한 키즈룸을 설계했다. 또, 창업자를 위해 애견용품샵이나 원데이클래스 등 창업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구성했다.
특히, 두 집을 하나로 공유해 '주거+오피스'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하나의 유닛(unit)을 2세대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쉐어방식을 적용해 1~2인 가구의 주거 효율성을 높였다.
2016년 설계한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 2-4생활권 주상복합'에는 국내 단일 단지 중 가장 다양한 80여개 이상의 평면타입을 제안했다. 이 역시 수요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좀 더 개성있는 주거 공간안에서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유선이 제안하는 공공주택 다양화 시도의 마지막 영역은 '프로그램의 복합화'다. 청사 등 공공시설과 주거를 같이 조성하거나, 주거·상업·문화를 한 데 묶는 개념이다.
이 같은 더하기 시도는 공간 효율성을 높일뿐만 아니라 거주자의 삶을 한층 풍요롭게 만든다.
유선의 복합화 혁신은 최근 설계한 인천 '루원시티 주상복합 7블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유선은 이 단지에 주거동과 별도로 저층 테라스형 문화·상업시설을 설계해 입주민과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전 조사를 통해 확인한 주 수요층인 30~40대 가족단위와 아동·청소년을 중심으로 시설을 구성했으며, 이미 보편화된 '주거+상업'에 '문화'까지 더한 복합화를 시도했다.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주거부문 총괄 목경웅 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순수한 아파트 단지로 조성되는 것이 보통인 반면, 민간 공동주택은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서 매우 다양한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며 "공공임대주택에서도 그런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면 입주자는 물론 지역 주민 삶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999년 설립된 유선은 Idea provider(고객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회사)를 모토로, 차별화된 디자인을 통해 국내·외 공공주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왔다.
지금까지 설계한 주거 규모가 12만여 세대에 이르며, 앞으로도 틀을 깨는 다양한 혁신 설계를 통해 새로운 주거 문화를 이끌어 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