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영화를 보러 갔다. 한 멀티플렉스사에서 단독 개봉한 외국영화였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외국 배우였고 평점도 높은 편이라 고민 없이 달려갔다. 막상 영화관에 들어가니 휑한 분위기였다. 명절 연휴 셋째 날 오후였음에도 관객들이 별로 없었다. 얼추 열 명 남짓이었다. 명절 분위기라기보다는 흡사 주말에 조조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시작됐고 보는 내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상영관에 있는 사람들은 잔잔한 감상 시간을 가졌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대목’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간 추석과 같은 명절 연휴 대목에는 대작들의 상영이 줄지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올 추석 들어서 그나마 기대작은 10여년 전 배우 황정민, 유아인에 스타감독 류승완이 연출한 천만 관객(2015년 8월 개봉, 총 관객수 1341만명) 흥행작 ‘베테랑’ 후속 버전인 ‘베테랑2’ 정도였다. 작년 추석만 하더라도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 하정우가 나온 ‘1947 보스톤’, 강동원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 한국 영화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했었다. 불과 1년 만에 ‘대작 가뭄’인 셈이다. 특히 작년 추석에 개봉했던 거미집을 비롯한 한국영화 기대작 3편은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추석 연휴 사흘간 관객 수 100만명을 넘기지 못한 건 코로나19 때를 제외하면 2011년 이후 처음이었다. 작년 추석 대작들의 흥행 참패로 제작비 투자를 비롯한 비용 부담과 경기침체 장기화 등이 맞물리면서 올 추석 영화계에 찬바람이 분 셈이다. 영화관들도 대목 때마다 집객 차원에서 여러 할인 프로모션을 했지만 이번 추석에는 딱히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 또한 마케팅 비용이 부담됐을 것이다.
추석 대목 실종은 코로나19 이후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영화인연대에 따르면, 올 들어 극장 관객 수(8월25일 누계 기준) 8450만명으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대비 절반(56%) 수준이다. 코로나19 이후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가 늘어난 데다 만만치 않은 영화 티켓 값 때문이다.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멀티플렉스 3사의 영화관 티켓 값은 성인 한 명 기준 2D·주말 가격 기준 1만5000원이다. 팝콘 등 먹거리까지 구매하면 2만원이 훌쩍 넘는다.
영화업계 관계자들은 내년이 더 암울하다고 한다. 신규 제작 중인 영화들은 거의 없고 영화관 수익성도 개선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가 이어진다면 문을 닫을 영화관이 한둘은 아닌 상황이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범죄도시3’, ‘서울의 봄’, ‘파묘’와 같은 대작 영화가 나와야 하는데 관련 투자가 쉽지 않다. 이러다 보면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영화관보다 OTT에 쏠리고 영화를 투자하는 제작사들은 점점 줄고 있다. 또 개봉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제작사는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경영난이 오고 신규 투자 및 제작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더더욱 영화관에서 볼 만한 영화가 없고 영화관은 콘텐츠 부족으로 어려움이 커진다. 언제쯤이면 관객들로 가득한 영화관을 다시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