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시대’를 연 신아일보가 창간 20주년(2023년)을 시작으로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매일 접하는 정치‧경제 이슈 주제에서 탈피, ‘문화콘텐츠’와 ‘경제산업’의 융합을 통한 유익하고도 혁신적인 칼럼 필진으로 구성했습니다.
필진들은 △전통과 현대문화 산업융합 △K-문화와 패션 산업융합 △복합전시와 경제 산업융합 △노무와 고용 산업융합 등을 주제로 매주 둘째, 셋째 금요일 인사동에 등단합니다. 이외 △취업혁신 △서민기업이란 관심 주제로 양념이 버무려질 예정입니다.
한주가 마무리 되는 금요일, 인사동을 걸으며 ‘문화와 산책하는’ 느낌으로 신아일보 ‘금요칼럼’를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나는 ‘교과서’와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이다. 다들 그렇다는 데도 쉽게 공감하지 않고 굳이 다시 살피고 가장 많이 팔린 상품보다 가장 적게 팔린 상품에 눈을 주는 삐딱함을 즐기는 부류다. 정갈하게 써 내려간 궁체보다 뉴욕 브롱스(Bronx) 뒷골목에서 보는 그래피티에 눈이 가고 마네, 모네보다 호크니, 뱅크시에 끌린다. 이제는 가수 중 가장 큰언니가 된 패티김의 엇박자가 멋스럽게 느껴지고 BMK의 스캣(scat)의 자유로움이 좋고 젊은가수의 도발이 침체한 머리 속을 깨운다.
삼복더위엔 땀 뻘뻘 흘리며 한 그릇 뚝딱 하는 손수제비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모양에서 느껴지는 특별함과 울퉁불퉁 재미난 식감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한우 스테이크가 고명으로 올라가는 짜장면이 아니더라도 ‘탕탕’ 반죽을 내려치는 소리에서부터 반응하게 되는 수타 짜장의 매력도 차고 넘친다. 짜장면을 먹다가 가끔 나오는 굵디굵어 못생긴 면 한 가닥에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듯 기뻤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서로 같지만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잘 어우러져 있어야 진정 멋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자전축이 삐딱하게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23.5도 기울어진 덕에 1년을 주기로 태양에 의해 더운 곳이 추운 곳으로, 추운 곳이 더운 곳으로 끊임없이 바뀐다. 만일 기울지 않았더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고 지구의 절반은 1년 내내 얼어 있었을 거다. 덕분에 겨울은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여름도 때가 되면 물러나 가을을 부른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GD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단단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가 결정질(結晶質)이 아닌 비정질(非晶質)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유리는 자연계에서 산출되는 대부분의 금속이나 광물과는 달리 분자 또는 원자 단위에서부터 규칙성이 없다. 일정한 규칙을 갖고 있지 않아도 상온에서 고체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정해진 규칙이 아니더라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나아가 다른 물질과는 확실히 ‘다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다름’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내 작업실에는 파티오라금이라고 하는 다육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제멋대로 자라는 듯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조형이, 각도가, 곡률이 예사롭지 않다. ‘와! 예술이야’라는 탄성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황금 비율을 식물에게서 배우고, 최고의 선생님인 자연을 경외하게 되는 이유다. 같은 나무인데 위에서 보고, 누워서 올려다 보고,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고개를 조금만 삐딱하게 돌려도 보는 방향에 따라 무궁무진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따금씩 다음에 나올 새싹의 위치를 예측해 보곤 하는데 쉽지 않다.
배고플 때 미치도록 끌리는 것이 치킨 냄새인데 배부를 때 제일 싫은 냄새도 치킨 냄새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같은 사물도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삐뚤어진 시각이 세상을 보는 각도를 바꾸고 다른 시각에서 보이는 세상도 분명 가치가 있다. 새 김치는 새 김치대로 묵은지는 묵은지대로, 새 청바지와 색바랜 청바지도 각각의 맛과 멋이 있다. 젊음과 나이듦이 각각에 어울리는 매력이 있듯이.
“어머 이 아이는 글씨를 그리고 있네?” 칭찬일까, 나무람일까? 글씨가 그림이고 거문고가 첼로다. 우리는 과거와 현대가 어울리고 장르가 장벽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기존관념에서 벗어날 수만 있어도 창조는 시작된다. 자기에게 익숙지 않은 것이 예술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어쩌면 삐딱함이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일어나게 하진 않을까? 마치 블랙스완처럼…
/황성일 먹글씨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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