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티메프 쇼크, 구영배 매직은 결국 '헬'이었다
[데스크칼럼] 티메프 쇼크, 구영배 매직은 결국 '헬'이었다
  • 박성은 생활유통부장
  • 승인 2024.07.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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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큐텐(Qoo10) 관계자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현재 사회·경제적 파장이 일파만파 커진 ‘티메프(티몬과 위메프) 사태’를 촉발한 그 큐텐이다. 당시만 해도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성장한 이커머스라는 것, 창업자가 국내 최초의 오픈마켓 ‘G마켓(지마켓)’을 만든 구영배 대표라는 정도의 배경만 알고 있었다. 

큐텐 관계자는 정부·기관 지원사업과 연계해 한국의 중소 셀러들의 해외 판로 개척에 도움을 주는 플랫폼으로서 역할이 크다고 자부했다. 또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를 앞세워 국내 물류센터를 빠르게 확장하고 해외 네트워킹을 통해 국내 B2B(기업 간 거래)는 물론 B2C(기업과 소비자)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창업자인 구 대표에 대해선 G마켓을 키우고 가치를 높여 큰 금액으로 이베이에 되판 것 보면 경영능력이 정말 대단하다며 치켜세웠다. G마켓은 2009년 미국의 이베이에 5500억원의 거금에 매각됐다. 

구영배 대표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다시금 이름을 알린 건 2년여 전인 2022년 9월 1세대 이커머스 티몬을 인수하면서부터다. 이어 이듬해 인터파크커머스와 위메프를, 올해엔 글로벌 이커머스 위시, 애경그룹 AK몰까지 큐텐에 편입시키면서 몸집을 빠르게 불려갔다. 큐텐은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를 잇달아 인수한 직후 “티몬은 특가 마케팅, 위메프는 오픈마켓 영향력, 인터파크커머스는 셀러·고객 유치 노하우 등 각 플랫폼마다 갖고 있는 강점이 다르다”며 “회사 규모가 커지는 것도 있지만 플랫폼별 강점을 공유하면서 시너지를 창출해 더욱 성장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다. 

일각에선 ‘구영배 매직’이라며 쿠팡, 네이버쇼핑에 이어 큐텐이 새로운 이커머스 공룡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큐텐 관계자가 했던 얘기가 문득 떠오르면서 구 대표가 쿠팡, 네이버쇼핑이 양분한, 또 무척이나 견고한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신선한 ‘균열’을 일으킬지 내심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구 대표가 일으킨 파장은 신선한 균열이 아닌 크디큰 ‘후폭풍’이었다. 티몬, 위메프 입점업체들에게 줄 대금 정산이 계속 미뤄지자 이달 들어 입점 셀러들의 이탈이 본격 시작됐다. 유동성이 갈수록 악화된 건 시간문제였다. 대금을 정산 받지 못한 입점 셀러들은 상품 판매를 중지하거나 철수했다. 티몬·위메프를 비롯한 큐텐 계열 플랫폼 입점사만 6만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중소 셀러들만 보더라도 대금 정산 지연으로 최소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대 피해를 입었다. SPC그룹·한샘·야놀자·11번가·시몬스 등 대형 기업들도 ‘티메프 쇼크’를 빗겨가지 못했다. 일각에선 티메프 사태가 장기화되면 중소 입점 셀러들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 이후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여행, 항공, 호텔·리조트업계가 다시 주춤거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건 티몬과 위메프에서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 다수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점이다. 어떤 이는 여름휴가 때 가족과 해외에서 추억을 만들려고 큰돈을 들여 여행상품을 예약했는데 출발일 직전에 취소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또 다른 이는 고가의 인테리어 시공 상품을 이사 날짜에 맞춰 구매했는데 생각지 못한 ‘시공 취소’ 문자를 받고 너무나 당황했다. 매일 수백명의 소비자들이 티몬, 위메프 본사에서 피해와 환불을 호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위메프는 큐텐에 인수된 후 매출은 더욱 하락하고 작년 기준 약 1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티몬은 2022년 기준 1500억원을 웃도는 손실을 냈다. 작년 사업보고서는 내지도 않았다. 두 기업 도합 9000억원에 육박하는 ‘자본잠식’ 상태다.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재원이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 피해는 금융권과 일부 기업들에 떠넘겼다. 마땅히 책임져야 할 구영배 대표는 핵심 자회사 큐익스프레스 대표 자리에 슬그머니 물러났다고 한다. 이어 입장문을 내고 큐텐 지분을 매각 또는 담보로 활용하거나 개인 사재를 털어 지금 사태를 수습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이런 내용은 적어도 공개석상에서 얘기했어야 했다. 

작금의 상황만 놓고 보면 구영배 매직이 아닌 ‘헬(Hell, 지옥)’과 다름없다. 연관된 수만여 기업과 소비자들은 헬 구덩이에 빠졌는데 구 대표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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