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긴축과 고금리 기조 속에서도 우리나라 기업의 부채가 줄어들기는커녕 국가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빨리 불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도 증가율 역시 세계 2위 수준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기업들이 대출로 위기를 막기에도 한계에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자금난에 허덕이는 국내 기업들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세계 주요 34개국 가운데 1위였고, 기업부채 비중도 세 번째로 높았다. 천문학적 가계 빚에 이어 기업 부채마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떠오르면서 민간 부채의 부실 뇌관을 제거할 선제 대응이 시급해졌다.
지난 11월 19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로 지난 2분기 101.7%보다 1.5%포인트 감소했지만, 2020년 이후 거의 4년째 관련 통계에서 1위다. 게다가 올해 3분기(7〜9월) 한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6.1%로 조사 대상 34개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이는 지난 2분기 120.9%보다 5.2%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증가 폭은 두 번째로 컸다. 기업부채의 총량과 증가 속도 모두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주요 선진국들은 강도 높은 긴축 기조 속에 기업부채 비율을 일제히 줄였지만, 한국은 거꾸로 역주행을 감행하면서 화를 자초하는 형국으로 우려만 더욱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에 이어 기업의 빚 폭탄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빚 수렁에 빠져 벼랑 끝에 내몰린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4대 은행’이 공시한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원리금은커녕 이자조차 받지 못하는 ‘깡통 대출(무수익여신)’ 규모는 올 초부터 9월까지 27% 이상 급증하며 3조 원에 육박했다. 지난 11월 10일 법원통계월보와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신청 건수가 1,213건으로 작년 동기 대비 64%나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기업 부실 또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IIF가 올해 들어 주요 17개국의 기업 부도 증가율을 분석했는데, 한국은 약 40%로 네덜란드(약 60%)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빚더미에 오른 국내 기업들이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급등, 소비 위축 등을 이기지 못하고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줄도산 경고음은 여러 곳에서 크게 들려오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한국은행의 ‘2022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의 42.3%, 즉 10곳 중 4곳은 이자 보상비율 100% 미만으로 기업이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대출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든 ‘좀비기업’ 상태다. 좀비기업의 비중은 고금리 기조 지속 등의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계속 상승 중이다. 게다가 파산하는 기업도 늘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전국 어음 부도금액 현황을 보면 올 들어 8월까지 어음 부도액은 3조 6,282억 원으로 2015년 연간 4조 6,361억 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법인 파산 접수 건수는 올해 8월까지 집계분만 1,034건으로 전 년 동기 대비 58.6%나 급증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기업부채 리스크와 여신 건전성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부도날 확률이 10% 이상인 부실기업 부채가 2018년 91조 원에서 지난해 213조 원으로 연평균 24%씩 늘어 최근 4년 새 2.34배로 불었다. 이는 같은 기간 기업 총부채의 연평균 증가율 12%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다. 중소기업의 금융기관 연체율도 0.51%(5월말 기준)로 1년 전보다 0.22%포인트나 높아졌다. 4대 은행에서 기업들이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깡통 대출’은 올들어서만 29% 급증했다. 국내 200대 기업 가운데 단기부채 상환 능력이 작년보다 악화한 곳이 절반이 넘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작금의 상황에서 우려하고 있는 한계기업들의 연쇄 도산이 현실화하면 실물경기와 금융 시스템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한계기업 중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가려내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활용할 수 없게되어 참으로 걱정스럽다. 기업이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 10월 15일 일몰로 효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물론 법정관리란 기업회생절차가 있지만 까다롭고 제약이 많다. 법정관리는 성공률(12%)과 정상화 기간(10년)에 있어서 워크아웃의 성공률 34%와 정상화 기간 3년 6개월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국회는 재입법을 통해 ‘기촉법’을 서둘러 부활시켜야 한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은 살리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은 퇴출하는 구조조정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금융권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아야 함은 당연히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가뜩이나 우리 경제는 올해 1%대 성장에 이어 내년도 2% 성장조차 위태로운 상황인데 ‘잃어버린 30년’의 일본처럼 우리 경제도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경제는 2028년까지 2%대 초반의 성장세에 머무를 걸로 내다봤다. 앞으로 5년간 저성장이 계속될 것이란 경고다. 지난 11월 19일 국제통화기금(IMF) ‘2023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2023 Article IV Consultation)’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1.4%에서 내년 2.2%로 높아진 후, 2028년까지 2.1~2.3% 범위의 저성장이 이어진다는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계기업들의 연쇄 도산은 ‘대외신인도’마저 더불어 추락시켜 외환위기와 같은 국가 재앙으로 비화하지 말란 법은 없다. 급증한 기업부채는 기업의 투자 여력을 떨어뜨려 저성장을 가속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한 기업부채 규모를 줄이는 한편 한계기업의 부실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서둘러 튼튼한 안전판을 마련해야만 한다.
한편 IMF는 한국의 ‘잠재성장률(Potential output)’을 올해 2.1%, 내년과 2025년 2.2%, 2026~2028년 2.1%로 각각 추산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하는데, IMF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코로나19 충격과 함께 2020년 1.3%로 1%대 초반까지 주저앉았다가 2021년 1.9%로 올라섰지만, 이후로는 별다른 반등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질성장률’은 2021년 4.3%로 잠재성장률을 2.4%포인트 웃돌았지만, 2022년에는 0.6%포인트(실질성장률 2.6% - 잠재성장률 2.0%)로 그 폭이 줄었다가 올해부터는 가까스로 잠재성장률만큼 성장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IMF는 전망했다.
특히 IMF 집행이사회(Executive Board)는 보고서에서 “장기적인 성장세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구조개혁이 요구된다.”라며 “생산력을 강화하기 위해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를 위험 요인으로 꼽으면서 혁신 동력을 강화하는 노력,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젠더 격차 축소 등을 제안했다.
정부는 IMF가 한국 경제를 향해 “지금 구조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향후 5년간 저성장에 빠질 것”이라고 한 경고를 가볍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특히 IMF가 제안한 ‘구조개혁을 통한 성장’은 물가 상승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매우 크다. 유동성을 풀어서 하는 성장 정책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지만, 구조개혁은 물가 압력을 높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부채를 줄이고 부도를 막기 위한 구조조정과 저성장 고착화를 막기 위한 구조개혁이 그 어느 때보다 화급하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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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