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시대’를 연 신아일보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매일 접하는 정치‧경제 이슈 주제에서 탈피, ‘문화콘텐츠’와 ‘경제산업’의 융합을 통한 유익하고도 혁신적인 칼럼 필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새로운 필진들은 △전통과 현대문화 산업융합 △K-문화와 패션 산업융합 △복합전시와 경제 산업융합 △노무와 고용 산업융합 △작가의 예술과 산업융합 △글로벌 환경 산업융합 등을 주제로 매주 금요일 인사동에 등단합니다. 이외 △푸드테크 △벤처혁신 △여성기업이란 관심 주제로 양념이 버무려질 예정입니다.
한주가 마무리 되는 매주 금요일, 인사동을 걸으며 ‘문화와 산책하는’ 느낌으로 신아일보 ‘금요칼럼’를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하늘이 푸르게 높이 펼쳐진 가을이다. 이 무렵이면 가을하늘의 구름처럼 살다 간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1896~1933년)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은하철도 999’만화도 ‘은하철도의 밤’이라는 겐지의 동화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는 어릴 적 농촌에서 살며 식물과 곤충 채집을 좋아하던 소심한 소년이었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던 겐지는 15세부터 단가(短歌·일본의 짧은 시)를 짓기 시작해 문학적 소질을 보이기 시작했고 25세에는 동화작가의 꿈을 안고 도쿄로 올라왔다.
겐지는 학생을 상대로 한 등사판 제작을 하면서 동화 창작에 몰두했다. 하지만 6개월 후 여동생의 병 소식에 귀향해 전공을 살려 농학교 교사로 취직했다. 이후 여동생이 2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애절한 마음을 많은 시로 남겼다. 얼마 후 고향 농민들의 가난한 삶을 보고 농민을 돕기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등 농경생활을 시작했다.
농민의 삶으로 뛰어든 겐지는 벼농사나 토양학, 식물학 등을 강의했다. 고향에서 벼농사 지도를 했고 비료의 중요성을 알리며 벼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수많은 시와 동화집 등을 출간하는 등 아동문학가로서 명성도 높아졌다. 늘 꿈꿔 왔던 창작동화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고 노력한 결과였다.
얼마 전 영종도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그림책 작가이지만 새 직장을 갖게 됐다. 어찌 보면 인생 3막에 들어선 것이다. 청년기와 결혼과 육아기를 거쳐 경력단절을 극복하고 재취업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할 때가 있었다. 새로 시작한 일은 예전에 가졌던 삶의 효용성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로운 자아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하늘의 뜻을 알 나이를 지나니 매사에 너그러워지고 충만해진 덕분이리라.
나의 하루는 겐지의 생활을 모토로 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 농사를 짓던 겐지처럼 간단한 스케치와 외국어 학습을 10분 정도는 꼭 한다. 혼자만의 독학이라 듣기가 많이 부족하고 미흡하지만 혼자 더듬더듬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림 공부도 놓지 않고 있다. 일상에서 오는 단조로움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내 삶의 가지들을 정리해주며 본연의 나로 침잠할수 있게 한다.
문득 내게 삶의 지혜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살아 있는 작고 여린 모든 것들에 대해 측은지심이 생기고 인생의 푸른 날엔 미처 보지 못했던 작고 미묘한 변화나 모습들이 지금은 더 잘 보인다는 점은 큰 변화다.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는 빠르지만 기술적인 배움의 속도는 더딘 편이라 숨이 차고 가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나는 좋다. 무엇을 하든 구애받지 않을 자유와 무엇을 하든 잘 해내고 말 것 같은 용기와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을 배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더 가지고 더 누리고자 다툰다. 가끔 물 빠진 서해 바닷가를 허적거리며 걷기도 하고 벤치에 앉아 민트색과 인디안 핑크색를 섞어 놓은 서해안 노을을 감상하기도 한다. “비에도 지지않고 바람에도 지지않고 눈에도 여름더위에도 지지않는 건강한 몸으로 욕심없이…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의 글을 다시 떠올리며.
/ 이은희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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