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올가을 패션 트렌드 "꾸미지 마세요"
[금요칼럼] 올가을 패션 트렌드 "꾸미지 마세요"
  • 신아일보
  • 승인 2023.08.18 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아트뷰로 이영희 대표

'인사동시대'를 연 신아일보가 창간 20주년을 맞아 '문화+산업'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칼럼을 기획했습니다. 매일 접하는 정치‧경제 이슈 주제에서 탈피, '문화콘텐츠'와 '경제산업'의 융합을 통한 유익하고도 혁신적인 칼럼 필진으로 구성했습니다.
새로운 필진들은 △전통과 현대문화 산업융합 △K-문화와 패션 산업융합 △복합전시와 경제 산업융합 △노무와 고용 산업융합 △작가의 예술과 산업융합 △글로벌 환경 산업융합 등을 주제로 매주 금요일 인사동에 등단합니다. 이외 △푸드테크 △취업혁신 △여성기업이란 관심 주제로 양념이 버무려질 예정입니다.
한주가 마무리 되는 매주 금요일, 인사동을 걸으며 '문화와 산책하는' 느낌으로 신아일보 '금요칼럼'를 만나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아무리 무더운 8월이어도 ‘입추’가 되면 여지없이 새벽 공기에 냉기가 돈다고 한다. 새벽녘에 열어 놓은 창문으로 기분이 좋을 만큼 찬기가 느껴지면 까실한 홑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계절이 오고 갈 때 즈음, 항상 어머니께선 옷장 정리를 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요즘같이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버리는 용기 혹은 미학’을 이해하지 못하셨다. 낡고 보풀이 생긴 니트는 수증기를 쏘이거나 일일이 손으로 뜯고 매만져 입었고 오래된 정장이나 재킷, 코트 등은 ‘원단이 좋아서’ 혹은 ‘살 때는 비싸게 주고 사서’ 등의 이유로 옷장을 지키게 됐다. 어머니께서는 “유행은 돌고 도니까 잘 보관해 두면 다시 입을 날이 온다”고 하셨는데 마치 이번 가을의 패션 트렌드를 예견이라도 하신 듯하다.

올가을 패션 트렌드의 핵심은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 ‘스텔스 럭셔리(Stealth Luxury)’의 연출이다. ‘올드 머니 룩’은 졸부가 아니라 대를 이어 부를 유지한 가문의 사람들이 입는 세련된 착장을 말한다. ‘스텔스 럭셔리’ 역시 은근한 세련미를 추구하는 ‘조용한 사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올가을에는 잘 만들어 기본에 충실한 좋은 옷을 갖춰 입으면 된다. 다소 유행을 따라 하기에 버거웠던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시즌이기도 하다. 올드 머니 룩은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패션’을 추구하는 MZ세대부터 심플하게 세련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연령층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이 로고를 부각시킨 디자인으로 명품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최대한 감추는데 전력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에 실린 귀네스 펠트로의 법정패션은 ‘올드 머니 룩’과 ‘스텔스 럭셔리’의 유행을 대변하는 사례가 됐다. 모종의 민사소송으로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 지방법원에 출두한 기네스 펠트로는 심플한 디자인의 코트와 평범해 보이는 스웨터, 부츠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지극히 심플한 연출이었지만 은근한 세련미와 우아함이 단박에 느껴졌다. 이 옷은 프랑스 디자이너브랜드 ‘C’ 제품이었고 귀신같이 알아낸 소비자들로 인해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한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고자 했던 기네스 펠트로의 법정 패션의 연출 의도는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요즘 SNS에 회자되는 재벌가 여성들의 옷차림 역시 심플하고 단순한 디자인에 세련된 컬러, 고급소재로 만들어진 제품들로 올가을 트렌드를 입증하고 있다. 화려함을 추구해 온 해외 유명브랜드들은 올가을을 겨냥해 앞다퉈 클래식한 디자인의 제품을 출시하며 유행의 확산에 동참하고 있다.

올가을에는 블랙과 그레이 계열 등 무채색이 중심이 된다. 소재감이 좋은 블랙, 그레이계열의 슈트와 재킷을 갖춰 입으면 좋을 듯하다. 클래식한 드레스 셔츠는 불변의 코디 아이템이다. 또한 레드가 포인트 컬러로 부각되는데 다양한 채도의 빨강에서부터 낙엽을 연상시키는 와인색상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자연스럽고 편안한 실루엣의 디자인이 대세인 가운데 어깨를 강조한 재킷과 큰 사이즈의 상의는 올가을에도 과감한 연출을 즐기는 패셔니스타로부터 여전한 인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자신이 없다면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반가운 사실은 마치 요즘의 경제 사정을 고려한 듯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평상복(후드 티 등)에 트렌치코트를 겹쳐 입는다든지 캐주얼과 정장을 매치하는 등의 융통성과 여유로움도 기대된다. 기본에 충실한 룩과 마찬가지로 액세서리 역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옷장 서랍에 쟁여뒀던 유행이 지난 넓고 커다란 스카프와 머플러는 올가을 최고의 연출 소품이 될 수 있다. 당당하게 꺼내어 올드 머니 룩을 완성하면 된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옷장에는 좋은 옷감의 클래식한 옷들이 가득했던 것 같다. 패스트 패션을 추종하면서 한 시즌 입고 버리는 옷들로 어지러운 옷장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옷감과 바느질이 좋은 옷을 사고 귀하게 입었던 어머니 시절로 회귀하면 좋겠다. 무더위가 조금 가시면 옷장 속에 수년째 잠자고 있는 슈트나 코트를 꺼내 놓아야겠다.

/ 이영희 서울아트뷰로 대표

※ 외부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master@shinailbo.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