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 치 앞도 못 보는 금융당국
[기자수첩] 한 치 앞도 못 보는 금융당국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3.03.2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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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은행권 돈 잔치, 이자 장사' 비판에 칼을 꺼내든 금융당국은 무라도 썰어야 할 판이다.

은행권 과점 체제를 허물기 위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실무작업반을 출범시키며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논의안마다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실제 금융당국은 1차 회의에서 은행권과 비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카드사 종합지급결제 허용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허용 △보험사 지급결제 겸영 허용 등을 제시했다.

종합지급결제업을 허용해 보험·증권·카드사 등 비은행권에서도 은행처럼 계좌를 개설하고, 계좌를 직접 보유하면서 급여 이체와 카드 대금, 보험료 납입 등의 서비스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심산이다.
 
문제는 지급결제 금액에 대해서는 예금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소비자 피해 리스크와 보완 방안 마련, 금산분리 제도 완화, 법 개정, 관련 시스템 구축, 금융결제망 이용료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대출이 제외된 결제와 이체라는 한정된 업무로는 은행권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2차 회의에서는 △은행업 인가 단위를 세분화하는 '스몰라이센스' △신생 특화은행 '챌린저뱅크' 등의 방안을 내놨다.

챌린저뱅크 도입과 기능에 대한 대표 사례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을 꼽았다.

당시 참석자들은 SVB에 대해 "별도 인가 단위에 따른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한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그런 SVB가 파산했다.

SVB는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일반 은행의 대출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신생 벤처에 투자금 유치 규모에 따라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다만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보유한 미 국채 등을 매각하며 약 18억달러(약 2조36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냈다.

이 소식에 스마트폰을 통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사태가 벌어지며 초고속 파산을 맞았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에 따르면, 예금주들은 SVB 위기가 처음 알려진 9일에만 420억달러(약 55조2000억원)를 인출했다. 이는 은행 총예금 24%에 달한다.

SVB 파산에는 가파른 금리 인상은 물론 편중된 자금 확보, 무리한 규제 완화가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당장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금융당국은 당초 계획대로 6월말까지 은행권 과점 체제를 허물 개선 방안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호기로운 은행권 때리기는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자'가 돼 버렸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