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30대 중반 이상의 군필자라면 다들 ‘원산폭격’을 한두 번쯤 경험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많은 희생자를 내고 생이별이라는 아픈 과거인 6.25전쟁 당시의 참혹했던 사건이 군대에서는 얼차려라는 군기잡기의 단골 메뉴로 쓰인 것은 아이러니다. 머리를 땅에 박고 뒷짐을 진 상태로 버티고 있노라면 정수리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목과 복근에 밀려드는 고통에 몸은 덜덜 떨리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지기 마련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디기만 한 군대 시계가 멈춰버리는 초자연 현상을 경험케 해준 것이 예전의 얼차려다.
사실 팀워크가 가장 요구되는 조직이 군대다보니 정신을 뜻하는 ‘얼’과 ‘차려’를 합쳐 ‘정신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로 규정 내의 얼차려는 교육훈련 목적으로 군대에서 규범화 돼 있다. 얼차려는 시기, 장소, 방법, 집행자가 명시돼야 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감독하에 실시해야 한다. 목적에 맞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육체적 고통을 주되 대상자의 체력을 고려해 팔굽혀펴기, 앉았다 일어서기, 보행, 뜀걸음 등을 시킬 수 있다. 원산폭격은 얼차려가 아니라 폭력적 가혹행위다. 이제는 병영부조리로 군대내 가혹행위였던 원산폭격, 한강철교, 선착순 같은 가학적 얼차려는 사라졌다고 최근 군 제대자들은 말한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사라지는 폭력적 얼차려가 21세기 디지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체육계에서는 여전히 만연한 모양이다. 그것도 폭행과 성폭력이라는 군대에서도 쉽지 않던 가혹한 방법으로 지금까지 자행됐다는데 국민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께 일본에서도 여자 체조선수 미야카와 사에 선수가 하야미 유토 코치에게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뺨을 얻어맞는 장면이 후지TV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자 사태가 일파만파 커진 바 있다. 코치는 일본체조협회로부터 ‘무기한 코치등록 말소’라는 중징계를 받았으나, 미야카와 선수가 기자회견을 열고 코치를 옹호하면서 일본 체조협회의 ‘파와하라’ 문제라는 새 국면이 열렸다. 파와하라는 권력을 의미하는 ‘power’와 괴롭힘을 뜻하는 ‘harassment’의 합성어로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윗사람이 가하는 부당한 가혹행위를 일컫는 일본 신조어다. 당시 사건은 하야미 코치가 미야카와 선수에게 가한 파와하라를 이용해 일본체육회 권력 정점에 있던 쓰카하라 지에코 여자강화본부장과 쓰카하라 미쓰오 부회장 부부가 하야미 코치에게 가한 또 다른 파와하라가 본질이라는 것이 사회전반의 대세적 시각이었다.
최근 우리도 쇼트트랙 모 스타 선수가 폭로한 J코치의 폭행과 성폭력 사태를 비롯해 전 유도 S선수의 폭로에 이르기까지 지금 체육계 부조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위 엘리트 체육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지도자의 말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체육계의 특성과 또 체육회와 지도자간 권력의 카르텔이 만들어내는 부조리의 병폐가 오롯이 선수들 몫이 된 것은 아닌지 씁쓸할 따름이다.
초·중·고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맞아가며 운동했다는 얘기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간 체육계는 물론이고 정부나 사회도 무관심했으며, 단지 올림픽 처럼 큰 대회에서 그들이 따내는 금메달에만 환호하며 묻어왔던 상처가 곪을대로 곪아 터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사회가 나서 치유해 나가야 한다.
정부와 수사당국은 이번 사태를 철저하게 조사해 일벌백계하고 그간 체육회에서 선수로 이어지는 수직적 권력구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조리를 하나씩 뜯어 고쳐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체육 꿈나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받지 않고 운동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마련을 정부가 주도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스포츠계에서 사라진 스포츠맨십을 하루빨리 되찾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