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나라는 저성장·고실업과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회경제적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 해결 방법은 시장에 맡기거나 국가 개입을 통해 재분배를 확대하거나 이를 절충해 호혜적 사회 기능을 강조하는 것이다. 정부는 당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시장 원리와 국가의 역할 활용 못지않게 사회 기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사회적 경제를 내수시장 활성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해하면서 조합기업 육성에 나섰다.
이 가운데 협동조합은 지역 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주민 소득 향상을 이끌어내고 공동체 복원에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돼온 기업 모델이다. 협동조합이란 일반기업과 달리 단기적인 이윤보다 장기적 이익 추구를 우선하며 사회갈등에도 포용적이다. 아울러 경제 불황기에 강한 생존력을 보여줌으로써 효과적인 위기 대응 모델로도 주목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기본법 시행 이후 전국에 걸쳐 수천 개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물론 이처럼 강한 열기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바가 적잖다. 무엇보다 협동조합은 아직 경쟁력이란 단어를 쓰기가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세할 뿐만 아니라 기술 수준과 수익성이 저조한 실정이다. 다수의 협동조합이 생겨났지만 국가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사회적 경제의 역사가 짧은 현실에서 건실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한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수천 개 신생 협동조합 가운데 제대로 운영 중인 곳은 불과 얼마 안 된다는 평가도 있다. 이는 협동조합을 향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협동조합은 본래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 모델로서 경제위기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조직이며, 오로지 이윤 극대화를 위해 내달리는 기업과 다르다.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 조직은 궁극적으로 공동체 내에서 생산·소비·교환·분배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블록 구축을 지향하는데, 우리나라의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큰 차이 없는 방식으로 운영돼 정체성과 성장 동력이 약하고 지역 만들기에도 소극적이다. 소비자협동조합이나 일부 신용협동조합을 제외하면 새롭게 등장한 기본법 협동조합이 공동체에 기반을 둔 본연의 핵심가치를 얼마나 철저하게 실천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전국 어느 곳에서든 비슷하다. 협동조합 육성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개발하고 각종 과제를 추진해왔지만, 지역 조합기업들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조합원들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기에는 아직 기초가 부족하다. 여기에다 풍부한 지역 내부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와 협력에 기초한 관계 형성을 일상화함으로써 사회자본 축적 및 시민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더 힘들어 보인다.
주민 모두가 협동조합 원리, 가치, 육성 필요성,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경제 비전과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 시급한 것은 협동조합이 무엇인지, 왜 육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학습과 토론의 장을 넓혀서 이상을 나눠가지고 이슈의 대중성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협동조합은 두 얼굴을 가졌다고 한다.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이므로 경제적 차원의 기업이지만, 경제 외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전체 사회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의 단체이다. 그런 생각을 제대로 공유해야 협동조합이 조기에 안정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