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외선의 부활
[기고] 교외선의 부활
  • 신아일보
  • 승인 2025.02.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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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 개통 하루 앞두고 2004년 3월 열차 운행 중단
21년 만에 달리는 기차…디젤기관차 투입해 명맥 이어

교외선에 다시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정기열차 운행이 중단된 지 21년 만이다. 교외선은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능의선'이라고 불렸다. 경의선 능곡역과 경원선 의정부역을 이어주는 노선이기 때문에 그 머리글자를 하나씩 딴 것이다. 

능의선은 일제 말기인 1944년, 대륙을 오가는 경원선 군수물자가 복잡한 용산이나 경성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색으로 진입하도록 하려고 건설에 착수했다. 반대로 경의선 쪽에서 능의선을 이용하면 경부선이 아닌 중앙선을 통해 부산에 이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완공을 보기도 전에 일제는 패망의 날을 맞게 됐고 국토가 분단되면서 결국 능의선은 부설 목적을 상실한 채 10년 넘게 방치됐다.

능의선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은 1958년이었다.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측량이 시작됐고 1959년 11월6일에는 능곡-의정부 간 32㎞ 구간의 기공식이 열렸다. 그런데 뜻밖의 암초가 나타났다. 의정부에서 5.4㎞ 지점에 미군 통신부대가 자리를 잡고 있어 궤도부설이 어렵게 된 것이다. 결국 5.4㎞를 남겨둔 곳에 가릉역을 임시 역사로 만들고 능곡역까지 26.5㎞만 개통하게 됐다. 

1961년 7월10일, 윤보선 대통령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통식이 열렸다. 그리고 2년 후 미군 부대가 이전하게 되자 곧바로 가릉-의정부 간 5.4㎞ 구간에 대한 공사가 시작됐다. 드디어 그 해 8월20일 10시 정각, 의정부역 구내에서 개통식이 열렸다. 이때부터 능의선은 '서울교외선'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열차는 서울에서 신촌과 수색을 거쳐 일영, 송추를 지나 의정부를 거친 후 경원선을 따라 용산, 서울로 돌아오는 '서회선', 그 반대 방향으로 순환하는 '동회선'이 하루 일곱 차례씩 운행했다. 이렇게 순환 열차를 운행하게 된 데에는 군사적 목적이 강했던 일제강점기, 국토 재건이 요구되던 1950년대 말과 달리 서울로 집중된 인구와 주택을 교외에 분산해 전원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1994년이 됐다. 많은 기대 가운데 서울교외선에 증기기관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들여온 우리나라의 마지막 증기기관차 SY-11호, 지금의 901호다. 증기기관차에 무궁화호 객차를 연결해 관광열차로 운행을 시작했고 예식장 객차도 있었다. 그런데 영업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까지 닥치자 더 이상 기차는 맥을 못 추고 2000년 5월15일 운행을 멈췄다. 마지막까지 교외선을 지킨 것은 3량 1편성의 도시통근형 디젤동차였다. 서울역과 의정부역 구간을 평일 3왕복 운행했는데 그마저 고속철도 개통을 하루 앞두고 2004년 3월31일 운행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25년 1월11일, 교외선에 다시 기차가 달리게 됐다. 전철화에는 너무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에 디젤동차 운행이 모두 중단된 국내에서는 오직 디젤기관차가 끄는 무궁화호가 유일한 대안이 됐다. 아직은 노선 주변이 한산해 하루에 4왕복만 운행한다. 수도권을 살짝 벗어나기만 해도 인구 소멸의 압박이 느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어떤 노선은 살아남아 전철화의 길을 걷고 어떤 노선은 폐지돼 흔적도 찾기 어렵게 됐다. 그런데 교외선은 이도 저도 아니면서 끈질기게 명맥을 잇고 있다. 그래서 10년 후 교외선의 모습이 정말 궁금하다.

/배은선 한국철도공사 철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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