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제 걱정을 멈추고 계엄을 사랑한 '그'
[기자수첩] 경제 걱정을 멈추고 계엄을 사랑한 '그'
  • 우현명 기자
  • 승인 2024.12.2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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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임기 반환점 새 출발, 윤 정부 경제·산업 정책은?’ 이런 기사는 쓸 일이 없어졌다. 윤 대통령의 임기는 12월3일 하룻밤 만에 반환점이 아니라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신 계엄 후폭풍이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기사가 매일 쏟아진다. ‘환율 1450원 시대, 철강·정유 직격타’, ‘항공사 환손실 막심’, ‘해외 방산 고위인사 방한 취소’ 등 산업계엔 날벼락이 떨어졌다.

누군가는 생각한다. “국가 경제도 제쳐놓고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라면 그보다 훨씬 중대한 사유가 있었다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마 대통령이란 사람이 그럴 리가 있나.”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존중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어떤 유명한 영화 한 편이면 설명이 될 것 같다. 냉전 시대였던 1964년 개봉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블랙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나’다.

미국과 소련 간 핵전쟁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미 공군은 어느 날 소련의 미사일 기지에 핵폭격을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믿기지 않아 재차 확인해봐도 틀림없다. 명령을 내린 자는 잭 D. 리퍼 장군. 그는 사실 ‘불소 음모론’을 믿는 미치광이다. 수돗물에 불소가 들어가는 게 사람들의 체액을 오염시키려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는 말을 그가 내뱉는 순간 그의 부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지만 이미 핵폭격기는 통신이 차단된 채로 출격한 뒤다.

꼭 영화 개봉 60년 후 한국에서 벌어진 일과 비슷하지 않나. 단어 몇 개만 치환하면 이번 계엄 사태와 판박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의 주요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직접 언급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검찰, 경찰 조사와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 음모론을 진지하게 믿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강성보수 유튜브에 심취해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하게 들렸다. 그 뒤틀린 인식이 결국 국내 산업계에 어퍼컷을 날리는 방식으로 표출돼버렸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국내 산업은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었다. 여수 화학단지는 무너질 위기에 처했고 철강사들도 공장 문을 닫고 생산량을 줄였다. 반도체 분야에선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의 리딩 포지션을 잃고 있다. 글로벌적으로는 ‘트럼프 리스크’까지 생겼다.

그러나 윤 대통령 눈으로 봤을때 국가 경제 따위야 ‘반국가세력의 부정선거’ 시도에 비하면 하찮은 것 아니겠는가. 한 국가의 수장은 그렇게 경제 걱정을 멈추고 계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음모론자 한 명이 온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 구조가 바뀌는 것은 여전히 아니다. 영화를 통해 배울 수 있듯이 핵에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wisewoo@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