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않으려면 배울 것이 하나도 없고, 배우고자 하면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세상을 살아온 날 만큼이나 커져가는 지적 호기심이 오래 전 학창 시절에 있었더라면 세상을 바꾸고도 남았지 않았을까, 호기를 부려본다.
X세대, Y세대, N세대, Z세대 그리고 알파세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신세대는 항상 존재해 왔고 세상을 바꾸는 신호탄이 되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성세대는 늘 그 신세대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고 신세대 또한 세월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포스트 신세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품으며 기성세대가 되어갔다. 신세대는 기성세대에게서 지식과 경험을 얻었다. 기성세대는 신세대에게서 보도 듣도 못한 ‘경이로움’을 경험했다. 누가 더 이익이냐라는 말이 어울리진 않지만 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하는 고사(불치하문:不恥下問)가 있다. 아랫사람이란 나이가 어릴 수도 있고 배움이 모자란 사람일 수도 있으나 배움에 있어서 격식이나 체면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정중히 묻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인데, 특정 분야에 있어서 나보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이 앞서 있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만 비로소 ‘정중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또한 질문이라는 행위를 넘어 세대 간의 지혜와 경험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주문 받는 직원이 있어도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가 편한 이들을 이해하기 쉽진 않았지만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같은 것일 수도 있다. 변화는 언제나 불가피하며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이전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재조명하게 된다. 각 세대가 겪는 경험은 다르고 그로 인해 형성된 인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보의 접근 방식과 소통의 방식이 급변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세대 간의 간극을 넓히기도 한다.
글씨 쓰는 사람의 눈으로 ‘요즘 젊은이들’의 글씨에 대한 생각을 보면 전통 서예보다는 현대적 디자인을 가미한 ‘멋글씨’에 관심을 주고 사진보다는 영상을 선호한다. 완성된 작품보다 스스로에게 집중한 과정을 더 흥미로워 한다는 사실 등이 과거 참선(參禪)에 가까운 정적인 예술이 이젠 액티브하고 다이내믹한 장르로 변해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글씨 쓰는 시간을 갖다 보면 이들의 머릿속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느낌을 내내 감출 수 없다. 상상을 넘어선 상상이 있다. ‘어른’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이러한 변화는 예술의 형태와 소비 방식에 대해서도 영향을 주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의 창작 과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최종 결과물보다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자신만의 작업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예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세대별 독창적인 시각과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야 할 시점에 있다. 호오(好惡)가 개입할 틈이 없다. 이를 통해 예술이 더욱 풍부해지고 세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다양한 경험이 융합되는 풍성한 문화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혼신의 힘을 담은 획 하나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가을이다.
/ 황성일 먹글씨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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