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이 있다. 제갈량이 자신이 아낀 장수지만, 전투에서 패한 책임을 묻고 눈물을 흘리며 마속(馬謖)을 참수한 데서 나온 말이다. 사사로운 감정을 뒤로 하고 엄정하게 규율을 적용해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을 비유할 때 쓴다.
지난 3월이다. NH농협은행에서 100억원대 배임 사건이 적발된 것이. 이 사건은 2019년3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무려 4년간에 걸쳐 이뤄졌다.
그리고 지난달 22일, 농협은행에서는 또 한 번 배임사건이 적발됐다.
5월 발생한 사건은 모두 2건으로 각각 53억4400만원, 11억225만원 등 총 64억원 규모다. 53억4400만원 규모의 사건은 지난 2020년8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오랜 기간 걸쳐 이뤄졌다. 이보다 작은 규모의 배임 사건은 2018년7월과 8월에 걸쳐 발생했다.
우리은행에서는 최근 100억원대 횡령 사건이 터졌다. 불과 2년 전 우리은행에서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00억원대 규모의 돈을 직원이 가로챈 사건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농협은행은 "업무시스템 보완과 임직원 사고예방 교육으로 재발 방지에 최선을 하겠다"고, 우리은행 역시 "관련 직원에 대한 엄중 문책과 전 직원 교육으로 내부통제에 대한 경각심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은 모두 해당 사건을 내부 감사를 통해 밝혀낸 사례라며, 내부통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입장도 전했다.
그런데 과연 연이어 수십, 수백억원대 금융사건이 발생한 것이 정상적인 상황인지 두 은행에 되묻고 싶다.
비단 금융 사건이 발생한 곳은 농협은행과 우리은행만은 아니다.
그 외 은행에서도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크고 작은 사건이 터지는 것이 대한민국 금융 현주소다.
또 금융 사고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건 또는 사고 당사 직원에 대한 엄중한 문책 △업무 시스템 보완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 강화가 단골 해법으로 제시됐다.
이쯤 되면 그간 금융사고·사건과 관련해 금융기관이 내놓은 해결책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 아닌가란 의구심마저 든다.
일벌백계(一罰百戒)라는 말도 있다.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뜻이다.
일벌백계를 언급한 이유는 어떤 직원이 업무와 관련해 위법 또는 규정에 어긋난 행위를 했을 때, 이를 통제하고 방지했어야 할 책임을 진 이들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장 7월부터는 금융권 사건·사고와 관련해 CEO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내부통제 책무구조도'가 시행된다.
책무구조도는 각각의 임원에게 담당 직무에 대한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배분하고, 사건 또는 사고 발생 시 이를 기준으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의 내부통제 규율이다.
농협은행과 우리은행 사건에 대해 어떤 대책이 나올지 금융권 안팎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록 은행 내 사고지만, 지주사 회장인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일벌백계'와 '읍참마속'의 자세로 그 어느때보나 무겁게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두 회장 모두 금융 관료 출신이란 점에서 농협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내놓는 대책이 향후 다른 금융지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랜 시간 지나 책임소재를 묻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잘못이라고 덮고 지나친다면 결국 이런 문제는 또 다시 반복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금융권에 필요한 건 그 어느 때보다 서슬 퍼런 칼날이다. 최근 벌어진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의 대규모 금융사건이 내부 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하더라도, 사건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내부통제 실패 사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한 처지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서는 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