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지연에 실거주 의무 완화 등 두고 시장 혼란도
거대 야당과 임기 말까지…주요 정책 추진 '안갯속'
윤석열 정부가 반환점을 향한다.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이 이어지면서 후반부 임기도 수월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2년여간 윤석열 정부의 주요 부동산 정책 추진 상황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성에 대해 살폈다. <편집자 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골이 깊어진 부동산 시장 침체 상황에 대대적인 규제 완화 기조를 내걸며 시장 정상화를 외쳤지만 여소야대 정국 속 관련 입법 지연에 발목 잡혔다. 이로 인해 실거주 의무 완화 등을 두고 시장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4월 총선 결과 정부 임기 말까지 여소야대 정국에 갇히게 되면서 앞으로도 주요 규제 완화 정책은 힘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5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120대 국정과제를 통해 '국민의 눈높이에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간 정부는 '부동산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펼쳐왔다. 대표적으로 정비사업을 통한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고 재개발 노후도 요건도 완화하기로 했다.
부동산 세제 완화도 추진했다.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부담 완화를 위해 1가구 1주택 고령자 등에 대해 종부세 납부유예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양도소득세에 대해선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를 한시적으로 유예했고 부동산 세제 종합 개편 과정을 통해 다주택자 중과세 정책을 재검토했다.
대규모 공급 대책도 마련했다. 수요에 부응하는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로드맵을 세우고 250만 호 공급 계획을 밝혔다. 인허가 등 행정절차 단축과 공급 관련 관행적 규제 개선을 통해 적기에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과제를 추진해 왔다.
◇ 방향성은 긍정적…협치 부재에 발목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침체 국면이 이어지는 만큼 규제 강화보다 완화책을 택한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급등한 원인으로 지목된 주택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세운 점도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택 시장이 침체하는 국면인 만큼 현재는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은 적절하지 못하다"며 "부동산 규제 완화가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견이 있긴 하지만 현 시국에서 규제 완화의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대중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도 "부동산 시장이 어려워진 점을 고려해 시장 경제 논리에 맞게 규제를 완화한 것은 잘한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 안정을 위해 270만 호의 대규모 공급 물량을 책정한 것도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리스크와 전세 사기 논란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은 부정적으로 진단했다. 여소야대 국면 속 법 개정을 요하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협치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정부가 그간 추진한 정비사업 안전진단 통과 의무 시기 조정과 사업주체 구성 조기화, 신탁방식 효율화 등은 '도시정비법' 개정을 요하고 소규모 정비 절차 간소화와 용적률 인센티브 및 기금융자 지원 확대 등은 '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 외 도시형생활주택 세대 수 제한 폐지와 신축 소형 주택 원시취득세 감면, 재정비촉진지구 노후 요건 완화 등 규제 완화책은 각각 '주택법'과 '지방세특례제한법', '도시재정비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들 정책은 법 개정 문턱에 가로막혀 아직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권대중 교수는 "PF (대출) 이자 등이 문제가 돼서 건설업계가 매우 어려운데 이쪽 대책이 미흡했고 전세 사기 사건도 의도적인 사기와 역전세 등을 구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250만 호 공급에 대해서도 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과 협치를 통해 법 개정을 요구하는 부동산 정책을 실현하지 못한 점이 미흡했다"고 봤다.
여소야대 국면 속 당정의 부동산 정책 발표와 실제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일었던 혼란이 수요자들의 의사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정부는 작년 1·3대책을 통해 전매제한 완화와 함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둔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기도 했다. 결국 대책 발표 1년 2개월 만인 올해 2월에야 당초 폐지에서 3년 유예로 완화된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송승현 대표는 "시행령만으로도 되는 부분이 있고 법이 개정돼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시장 침체 국면에서는 정책과 입법 간 시차로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며 "불확실성이 유지되다 보니 거래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 22대 국회도 여소야대…규제 완화 '빨간불'
윤석열 정부 임기 말까지 함께할 22대 국회에서도 여소야대 흐름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규제 완화 드라이브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4월 총선 결과 민주당 170석과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진보당 각 3석 등 범야권 의석수가 192석에 달한 반면 국민의힘은 108석에 불과하다.
21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정부·여당의 입법 활동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안 국회 통과를 위해선 단독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1기 신도시 재정비와 철도 지하화 정도를 제외하곤 입장차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주요 부동산 관련 정책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 △징벌적 과세 완화 △원활한 대출 공급 등을 통한 시장 정상화를 꼽았다. 그러면서 "부자 감세하려는 것이 아니고 국민 모두가, 특히 중산층과 서민들이 안정적인 주거 보장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국민과 또 국회를 더 설득해서 이 문제가 시장 정상화를 통해 풀려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 지속에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은 힘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관련 법령 개정안이 설사 국회 문턱을 넘더라도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정부의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 모두 과도하게 강화된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한 시장 정상화"라며 "일관되게 추진했는데 법령 개정이 많이 막혔고 앞으로도 잘 안 될 것 같다"고 봤다.
주요 쟁점 사안별로 보면 정부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 폐지를 추진 중이다. 이들 법안이 임대차 시장을 왜곡해 전세난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임대차 2법을 유지하면서 임차인등록제 도입과 인센티브 제공으로 임대시장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재건축 안전진단 폐지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를 두고도 입장 차가 크다. 정부·여당은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한 도심 주택 공급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를 위해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총선 정당 공약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법정화하겠다며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다주택자 중과세 완화 등 부동산 세제개편과 관련해선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고민정 의원이 지난달 실거주 1가구 1주택에 대한 종부세 면제·재설계를 언급했고 대통령실은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다만 민주당 지도부가 종부세 관련해 언급 자제령을 내리는 등 아직 갈 길이 먼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주요 규제 완화 정책 추진이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 정부가 시급히 다뤄야 할 문제로 주택 공급 확대 기반 마련을 꼽았다. 이를 위해 부동산 PF 부실 처리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견해다.
두성규 목민경제연구소 대표는 "(부동산 PF 처리 과정에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향후 정치·정책적 측면에서의 공급 부족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공을 담당할 수 있는 건설업계가 자칫하면 초토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며 "당장의 과제로 닥친 부동산 PF 부실 부분 처리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고 가능한 한 신속하게 마무리 지어야만 안정적인 공급 토대를 다시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교수는 "여소야대 정국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한 정책 추진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수요-공급 대책으로 연도·지역별 수요를 예측해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