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계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합의한 결정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1일 주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합의 내용에 대해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의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며 “이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그간 논의를 통해 중소기업계도 장시간 근로 관행의 개선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인력 부족과 생산량 감소, 비용증가 등 중소기업 현실을 고려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청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이번 국회 합의는 전체 사업장의 99.5%를 차지하는 300인 미만 기업을 대상으로 한꺼번에 근로시간 단축을 도입하고 4년의 유예기간도 면벌기간으로 민사책임은 즉시 발생하는 등 사실상 규모별 준비 단계를 두지 않은 것으로 중소기업계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여야합의안은 지난 노사정 합의안에 포함된 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 등 기업의 생산량에 따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보완책조차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중기중앙회는 “최근 통상임금 범위 확대, 정년연장, 출퇴근재해 도입 등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각종 노동현안을 감안할 때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까지 더해진다면 중소기업은 생존을 우려할 처지로 내몰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근로자 임금 감소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기 중앙회는 “중소기업의 월평균 임금감소폭은 4.4%로 대기업 3.6%에 비해 더 높아, 영세사업장은 인력부족 현상을 해결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며 임금 격차로 인한 대기업 쏠림 현상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시간 단축 적용구간을 기업규모별로 세분화해 6단계로 하고, 노사합의에 따른 특별연장근로 등 보완방안을 함께 시행해야 한다”며 “인건비 상승과 장시간 근로 선호의 주 원인이 되고 있는 초과근로할증률을 현행 50%에서 항구적으로 25%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연장·휴일근로가 중첩될 경우 가산 수당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되 중복할증은 적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급 주휴일과 높은 할증률 등 휴일근로에 대한 보호가 이미 두터운 상황에서 중복할증까지 인정하게 되면 중소기업의 연간 부담액은 8조6000억원에 달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도 근로시간 단축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중견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노동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나, ‘9.15 노사정 합의’의 정신마저 외면한 채 주당 근로시간을 축소하기로 여야가 전격 합의한 데에는 실업 정책 실패의 책임을 기업과 근로자에게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또 “지난 4년 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려 52조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는데도 청년 실업률이 10%를 상회할 만큼 최악의 상황에 이른 것은 관련 정책들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데 기인한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중견련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면 12조 원의 기업 인건비 추가 부담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필수 숙련공 운영으로 근로시간 조정이 어려운 기업들의 인력난으로 OECD 선진국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동생산성은 더욱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이 같은 추가 부담은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제재 강화, 미국의 보호주의 현실화 등으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확대 유인을 현저히 감소시켜 경기 둔화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견련은 “기업의 추가 부담과 근로자의 소득 감소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으로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휴일근로 중복할증을 배제하고,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등 최소한의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년은 물론 모든 구직자가 원하는 것은 과시적 수치로 집계되는 ‘아무 일자리’가 아니라 행복한 삶과 자아실현을 병행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로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근로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쉼표가 있는 삶’이 아니라 그저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삶’이 되지 않도록 할 추가적인 정책 대안 또한 적극적으로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부연해싸.
중견련은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발맞춰 포괄적인 사회안전망 강화, 효과적인 이직과 재취업 및 평생교육 확대 등을 통해 구직자와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실효적인 정책 기반을 마련하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신아일보] 조재형 기자 grind@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