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체 전력수요 10년 전보다 2배 ↑… 전기요금제 개선 불가피
최근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원전 3기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전력수급경보 ‘관심’ 단계까지 발령됐다. 또 본격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8월에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전력 수요량이 공급량을 뛰어넘어 정전대란의 가능성마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내년까지 계획대로 발전설비가 들어설 경우 10GW(기가와트=10억 와트와 동일한
단위) 분량의 전력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력위기를 탈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이유는 유류(油類) 등에 비해 싼 전기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송전망 포화로 인한 전력계통 불안정, 원전설비 노후화 등과 같은 불안요소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력수급 위기 진단과 산업체 자가발전 도입 확대 방안’이란 주제로 지난 24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오영식 국회의원과 에너지시민연대가 주최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 이 자리에는 (왼쪽부터) 포스코 환경에너지기획실 김재원 기후에너지그룹장, 홍익대 전영환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 박성택 과장, 한밭대학교 조영탁 경제학과 교수, 가천대 김창섭 교수(좌장), 에너지시민연대 석광훈 정책위원, 에너지관리공단 김인수 기술지원본부장,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최광림 실장, 여수YMCA 김대희 정책국장 등이 참여했다. ⓒ온케이웨더 박선주 기자
이 자리에 모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산업체의 자가발전률이 낮아 블랙아웃 현상 등이 생길 시에는 전 생산공정이 멈출 가능성이 크므로 산업체 자가발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 반복되는 전력수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비교적 많이 이용하는 산업체의 자가발전 도입·확대 방안을 강구하고 전기료를 현실화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오영식 국회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사회의 전력화(電力化)가 가속화되면서 예전부터 전력수급이 불안했던 하절기는 물론 동절기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내 전력소비의 51.8%를 차지하는 산업체의 자가발전의 도입·확대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시민연대 남미정 공동대표는 “전력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기를 부른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하고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잘못된 전기 가격, 대형화·집중화(한 지역에) 되는 발전설비와 장거리 송전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등 풀어야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 에너지시민연대 남미정 공동대표 ⓒ온케이웨더 박선주 기자
유류가 오르면서 전기수요 급증…동절기·산업용·수도권 증가 두드러져
한밭대학교 조영탁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수급위기 진단과 향후 대응과제’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고유가 현상이 나타난 이후 전력수요량이 급증했다”며 “특히 동절기·산업용·수도권의 전기수요가 이전보다 두르러지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 산업은 에너지 다소비구조로 돼 있는데 최근 유류(油類)가격이 오르면서 전기 사용량이 급증했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LCD를 포함한 ‘영상음향ICT’ 부문이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전력위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의 하나로 원전 가동 중단도 빼놓을 수 없다. 원전 부품 고장으로 원전이 멈춰서면서 전력수급에 지장을 초래했다. 하지만 계획대로 2014년까지 원전을 더 짓고, 설비 예비율의 수치를 맞춘다 해도 기존 발전설비의 노후화 등으로 원전이 멈출 가능성이 있어 장기적인 수급안정성을 보장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 조영탁 교수의 설명이다.
▲ 한밭대학교 조영탁 경제학과 교수 ⓒ온케이웨더 박선주 기자
그는 “원전이 대규모 에너지(전기) 공급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원전이 멈출 경우 대규모 공급탈락으로 귀결된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원전 발전단지가 서해중부·인천·강원·고리 지역(2013년 29%)에 집중돼 있는 것도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 상태로 2027년이 되면 네 지역의 설비 점유율이 51%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처럼 기존 발전단지의 대규모화로 계통불안정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계통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고장파급방지시스템(Special Protection System·계통분리, 발전기 탈락, 송전선로의 연쇄차단 등 광범위한 파급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시스템)을 설치해둔 상태지만 설비가 한곳에 몰리면 오작동의 가능성도 커진다.
조 교수는 “계통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설비의 분산배치’ 등을 강조하면서도 국민들의 원전 기피현상으로 전력수요가 많은 수도권에 짓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에너지시민연대 석광훈 정책위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10GW의 발전설비가 준공될 예정이나 유류에서 전기로의 전환수요가 증가하고, 기존 원전설비의 노후화 등으로 인해 전력수급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며 “산업체가 자가발전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산업체의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 위원은 “일본의 경우 산업체의 자가발전비율이 2011년 22.6%로 2001년(14.3%)보다 높아진 반면, 우리나라는 2001년 9.3%에서 2011년엔 4%로 절반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제조업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산업체가 어느 정도의 자가발전설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제조업의 에너지 소비양상이 변해 지난 10년간 전기 사용은 2배 증가했고, 유류는 3분의 1로 줄었다”며 “국내 산업체의 전력수요 증가분이 대부분 가열·건조공정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유류를 통해 충족됐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 에너지시민연대 석광훈 정책위원 ⓒ온케이웨더 박선주 기자
전력수요 수도권에 몰려 전력계통 불안정 심화
석 위원은 “전력계통의 불안정이 심화되는 원인은 수도권에 전력수요가 몰려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경기지역 전력의 35% 가량을 반도체·LCD 분야의 삼성전자 수원·용인, LG디스플레이 파주, SK하이닉스 이천 등 이 네 곳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제조업 전력수요를 주도하는 3대 업종(철강·석유화학·영상음향)의 유류-전기 전환추세를 억제하기 위해 전기요금제 개선이 불가피하고, 전기수요를 자체적으로 충당하기위해 상용 자가발전의 확대를 통해 전력수급난을 해소하자”고 제안했다.
포스코 환경에너지기획실 김재원 기후에너지그룹장에 따르면 포스코에서는 원전 3기에 해당하는 자가발전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업체 자가발전은 현재 포스코와 같은 철강 부문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철강·석유화학은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가스·폐열·증기 등의 파생에너지가 발생하지만 영상음향ICT(정보·통신 기술) 업종은 파생에너지가 적기 때문이다.
석광훈 위원은 “국내 산업체 자가발전 확대를 위해서는 연료가격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처럼 자가발전 지원제도를 도입하거나 자가발전용은 설계비와 설치비, 전기 사업자에 대한 판매용은 설계비·설치비·연료비를 지원하는 등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간 가격차·높은 전력밀집도 해소 관건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외에도, 2002년 도쿄에서 부품 고장으로 원전 17기가 1년간 정지했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일본은 10년 전에 경험했다”며 “우리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산업체 자가발전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패널토론에 나선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최광림 실장은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의 전력수요문제는 예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이 산업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며 “산업체 자가발전을 어느 정도 확대하는 것에 공감하지만 모든 것에는 역할이 있다. 전기는 국가안보와도 연결된 공공재이기 때문에 산업체가 전기를 발전시켰을 때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 박성택 과장(오른쪽 두 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온케이웨더 박선주 기자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과 박성택 과장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저렴하다고 해서 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며 “산업체의 전기요금이 싼 것은 다른 에너지(유류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OECD 32개국 중 멕시코와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 모두 주택용보다 산업용 전기가 싸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산업용 전기는 사업장에서 생산 활동을 하기 위해 쓰이는 전기들이고, 기업도 국민인데 그 자체를 백안 시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다만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와 좁은 국토에 전력밀집도가 높은 점, 에너지 간의 가격차가 생긴 것은 문제다.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