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50주기 추모 기념식…국내 천문기상학 초석 다진 인물
우리나라의 근대적 기상 자료는 100여년 이상 축적돼 왔다. 이는 세계적 이슈인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줬다는 면에서 의의가 크다. 우리나라는 과거 일제강점기의 정세 불안과 일본의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한 인재 부족 등으로 기상업무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전국 14개 측후소와 2개 출장소에서 기상관측과 날씨 예보를 하는 등 독자적인 기상 업무를 수행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젊은 직원들의 군입대로 정상적인 기상업무가 중단되자 당시 국방부 장관과 문교부 장관에게 기상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그들을 다시 복귀하도록 해 전시에도 기상업무가 이뤄졌다. 이 같은 일들은 모두 초대 관상대장(현재의 기상청장)이었던 고(故) 우남 이원철 박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박사(1896~1963)는 우리나라 최초의 이학박사로 천문기상학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지난 1948년 국립중앙관상대가 신설되면서 초대 관상대장(현재의 기상청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의 천문과 기상 관련 교육 및 업무의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지난 1963년에 영면했다.
▲ 서울 관측소에 처음 도입, 설치된 은반직달일사계로 일사량을 관측하고 있는 이원철 박사의 생전 모습(1959년) ⓒ 기상청
그의 뜻을 기리고자 28일 서울YMCA 대강당에서 ‘우남(羽南) 이원철(李源喆) 박사 추모 50주기 기념식’이 열렸다.
기상청, 한국천문연구원, 서울YMCA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관련 주요 인사를 비롯 학계 등에서 200여명이 참석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 묵념을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됐으며 이일수 기상청장, 박필호 한국천문연구원장 등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 ‘국가 기상 발자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전영신 국립기상연구소 황사연구과장
이일수 기상청장은 “이원철 대장님은 우리나라 기상학을 개척하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던 분이다. 일찍이 우수한 기상 인력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상기술원양성소를 신설해 전문 인력 배출에 힘쓰셨다”며 “UN 산하 세계기상기수 아시아지역협의회에 참가하는 등 기상업무의 국제화에도 많은 활동을 하셨기에 오늘날 전 세계 37개뿐인 세계기상기구 집행이사회의 위원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 추모사를 하고 있는 이일수 기상청장
이어 박필호 한국천문연구원장도 추모사를 통해 “이원철 박사님은 국립중앙관상대를 설립해 초대 대장으로 15년을 넘게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천문 및 기상 관련 인재를 양성하셨다”며 “천문학 분야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였던 그의 사상과 정신을 이어받아 지난 1974년 대통령령으로 국립천문대가 발족했으며 이후 1978년 소백산관측소 준공, 1985년 우주전파관측소 설치, 1996년 보현산천문대 준공, 1999년 한국천문연구원 등이 출범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지난 2006년 보현산천문대 1.8m 광학망원경을 이용해 발견한 소행성을 국제천문연맹(IAU) 산하 소행성센터(MPC)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아 ‘이원철’로 명명했다”며 “천문연구원 본원에 ‘이원철 홀’을 만들어 박사님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념식에는 나일성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추모 특별 강연과 ‘국가 기상 발자취’, ‘국가 천문 발자취’ 등의 행사도 함께 진행됐다. 전영신 국립기상연구소 황사연구과장이 발표에 나섰던 ‘국가 기상 발자취’ 시간에는 사진으로 보는 이원철 대장님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의 사진 및 유품 전시회 등도 함께 진행됐으며 29일부터 내달 2일까지 기상청 본청에서도 전시된다.
▲ 28일 서울 YMCA에서 열린 이원철 박사 50주기 추모식에 참석한 인사들.
▲ 한국천문연구원장(왼쪽)이 이원철 박사의 후손인 이상기씨(오른쪽)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 미군기상관계자들이 송월동 국립중앙관상대를 방문했다.(1958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이원철 박사) <이원철 추모 사진전 촬영>
▲ 제9회 지방측후소장회의 기념사진 (1956.10) <이원철 추모 사진전 촬영>
▲ 국립중앙관상대 낙성일(= 제1회 세계기상일)에서 이원철 박사가 기념사를 하고 있다.(1961년) <이원철 추모 사진전 촬영>
▣ 우남(羽南) 이원철(李源喆) 박사는…지난 1948년 국립중앙관상대가 신설되면서 초대관상대장을 역임했다. 1954년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 자금으로 자기온도계, 자기습도계, 수은기압계 등 종관기상측기 28종을 도입해 관측 장비를 현대화했다. 1959년에는 태양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식해 은반일사계를 설치해 매일 관측 하는 등 기상업무의 현대화에 이바지했다.또한 기상기술원 양성소를 신설해 기상 전문인력 배출에 힘쓰는 한편, UN 산하 세계기상기구 아시아 지역협의회에 참가하는 등 기상업무의 국제화에도 앞장서 우리나라 기상업무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그는 우리나라 천문학 개척에도 앞장선 과학자였다. 1926년 미시간 대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정교한 분광학적 관측과 계산으로 독수리자리 에타별이 맥동변광성(시간에 따라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의 하나로, 별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밝기가 변하는 것을 의미)임을 밝혀내 우리나라 최초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그 당시 이 연구는 전 세계 천문학계에서도 매우 앞서가는 연구 주제로 해외 과학 학술지에 상세히 발표돼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다.이후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이 박사는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천문학 교육에 힘썼으며 서울YMCA에서 정기적인 대중강연 등을 통해 천문학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섰다.한편 그는 해방 이후 관상대(=기상청) 초대 대장으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천문 및 기상과 관련된 인력을 키우고 제반 제도를 확립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가 직접 편찬하여 배포한 역서(曆書·음력날짜, 월령, 일월식, 조석, 24절기의 시각, 매일의 일월출몰 시각 등을 계산한 결과를 담고 있는 책)는 국민들의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정연화 온케이웨더 기자 lotusflower@onkweath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