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은행, 언제쯤 ‘너희은행’ 오명 벗을까
[기자수첩] 우리은행, 언제쯤 ‘너희은행’ 오명 벗을까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4.09.0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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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한 케이블 TV 채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풍자 단편 애니메이션을 내보낸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대기업 채용 면접에서 압박 면접을 견디지 못한 응시자가 면접관들에게 우스꽝스럽게 대든다. 당연히 면접장은 난장판이 되고 분노한 면접관들은 응시자에게 나가라고 소리친다. 그때 한 면접관이 질문한다. “혹시 XX고등학교 출신이에요?” 응시자가 그렇다고 하자 바로 ‘합격’.

이 회사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사훈을 면접장에 대놓고 걸어놓은 막장 기업으로 묘사됐다. 결정적으로 애니메이션 초반에 짧게 등장했던 회사 이름은 바로 ‘느그(너희)은행’이다. 당시 우리은행에서 불거진 채용 비리를 풍자한 것이다. 작품 내 등장하는 은행 건물도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사 빌딩과 묘하게 닮았다.

당시 우리은행은 신입 공채에서 은행 내부 인사 추천 등으로 16명을 특혜 채용했다. 이는 일반 신입사원 150명 중 10%가 넘는 규모였다. 애니메이션에서 꼬집었듯 말 그대로 ‘우리가 남이가’식 채용이었다.

우리은행이 채용 비리 사태로 홍역을 치룬지 7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은행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9년 지주사 전환과 2022년 완전 민영화 등 회사 숙원 사업을 모두 해냈다. 그 결과 국내 5대 금융그룹 중 하나로 당당히 발돋움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혼란이 이어졌다.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로 소비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3년간 기업개선부 직원 700억원대 횡령과 김해금융센터 100억원대 횡령 등 굵직한 금융사고도 발생했다.

정점을 찍은 것은 최근 발생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020년 4월3일부터 올해 1월16일까지 손 전 회장 친인척이 확실하거나, 친인척이 실제 자금사용자로 의심되는 차주에게 총 42건, 616억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이 가운데 350억원(28건)이 대출 심사와 사후관리 과정에서 통상 기준이나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손 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와 은행에 지배력을 행사하기 이전 해당 친인척 관련 차주 대상 대출은 5건, 4억5000만원에 불과했다. 지배력을 행사한 이후 대출액이 137배가량 불어난 셈이다.

손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대부분은 한 지역본부장 주도로 실행됐다. 손 전 회장이 직접 개입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적어도 해당 본부장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음가짐으로 부당대출을 실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간 당연하게 여겨 왔던 기업문화와 업무처리 관행, 내부통제 체계 등을 되짚어본다고 밝혔다. 과연 우리은행이 이번에야말로 ‘너희은행’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

m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