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상업 출신 '전임자 지우기' 반복…이번엔 '위비' 브랜드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으로 금융권이 떠들썩한 가운데, 이번 사태의 배경을 두고 우리은행 내 한일·상업은행 간 계파 갈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는 은행 내부에서 자체 조사로 파악된 사건이 제보를 통해 금융당국에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리은행은 1998년 한일·상업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한빛은행 후신이다. 통합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양 은행 출신 간 대립과 갈등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을 대상으로 한 대출 취급 적정성 관련 현장점검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금감원 검사에서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관련 차주를 대상으로 616억원 규모의 대출이 실행됐으며, 그중 350억원은 ‘부적정 대출’로 파악된 것으로 드러났다.
눈여겨볼 부분은 금감원이 현장조사를 하게 된 배경이다.
금감원은 이번 조사가 손 전 회장 사건에 대한 제보를 받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시작됐다고 밝혔다. 우리은행도 “지난 5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심화 조사를 진행하던 중 금감원 민원 확인 요청에 따라 파악된 내용 일체를 금감원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이 이번 사건을 자체 검사로 포착한 시기는 올해 1분기다. 3월18일 임종룡 현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에게 검사결과가 보고됐고, 4월 관련자 면직 등 징계가 이뤄졌다.
이후 추가 검사 도중에 금감원에 민원이 접수됐다. 우리은행 내부에서 흘러나간 제보일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제보로 인해 우리은행 치부가 드러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7년 불거진 우리은행 채용비리 사태도 내부고발로 비롯됐다는 설이 파다했다. 상업은행 출신 인사가 연달아 행장에 선임되면서 한일은행 출신들의 불만이 내부 비리 문건 유출로 이어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이 사퇴하고 새 은행장으로 오른 인물이 한일은행 출신 손태승 전 회장이다. 7년이 지난 현재는 반대로 손 전 회장이 당사자로 지목당한 형국이다.
우리은행 계파 갈등의 골은 깊다. 이를 봉합하기 위해 은행장 자리는 상업·한일은행 출신 인사가 번갈아 맡고, 임원 인사 시 양 은행 출신을 같은 비율로 맞추는 ‘동수원칙’ 불문율까지 있었을 정도다.
우리은행은 계파 갈등이 사라졌다고 주장하지만, 임종룡 회장 취임 당시 “분열과 반목의 정서, 낡고 답답한 업무 관행,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의 문화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는 발언을 비춰보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통설이다.
실제 손 전 회장 재임 시절에는 이원덕 전 행장 등 한일은행 출신이 득세했다. 임종룡 체제인 현재는 조병규 행장을 비롯해 기동호 기업투자금융부문장, 김범석 국내영업부문장 등 상업은행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해묵은 계파 갈등 탓에 우리은행은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될 때마다 전임 행장이 추진한 사업 전략을 폐지하는 ‘전임자 지우기’ 행태도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올해 우리은행이 다시 꺼내든 ‘위비프렌즈’가 있다.
위비프렌즈는 2015년 출시돼 우리은행 간판으로 활약한 브랜드 캐릭터다. 은행권에서 캐릭터 저작권 라이선싱 부수업무 신고를 마치고 브랜드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건 위비프렌즈가 처음이다.
위비프렌즈는 당시 우리은행 모바일뱅킹이었던 ‘위비뱅크’를 알리는 핵심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위비프렌즈는 손 전 회장이 취임하며 2018년 돌연 자취를 감췄다. 다른 계파인 이광구 전 행장이 주도한 만큼 손 전 회장이 계승을 거부하고 새 판을 짰기 때문이다. 위비프렌즈는 폐지 수순을 밟았고, 위비뱅크는 현 ‘우리WON뱅킹’으로 브랜드명이 바뀌었다.
KB국민·신한·NH농협 등 다른 시중은행이 브랜드 캐릭터 중요성을 깨닫고 위비프렌즈를 참고하던 시기에 되레 역행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역사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위비프렌즈는 손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 6년 만에 부활해 현재 우리은행 마케팅 전선에서 활용되고 있다.
현재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위비트래블 체크카드’ 모객 수 등을 직원들에게 할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회장은 지난해 취임하며 우리은행 내 계파 갈등을 없애겠다고 공언했지만, 지속적인 내부 분열 잡음이 나오면서 리더십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에 접수된 제보가 은행 내부에서 이뤄졌는지는 알 수 없다”며 “이번 사태가 계파 갈등으로 인해 불거졌다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